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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rshwin, Rhapsody in Blue

 

The Symphony Orchestra of the Bulgarian National Radio

Andrew Armstrong, Piano,

Maxim Eshkenazy, Conductor

 

 

 

 


 

 

이 곡은 두대의 피아노를 위한 곡이였다. 그리고 타이틀도 '아메리칸 랩소디(American Rhapsody)'였다. 랩소디 인 블루 (Rhapsody in Blue)'라는 명칭은 형 아이라 거쉰이 조지에게 제안한 것으로, 미국의 화가 휘슬러 (James McNeil Whistler)의 전시회에서 감명을 받고 이 명칭이 떠올랐다고 한다. 몇 주 뒤 거쉰은 이 곡을 완성하여, 화이트먼 악단에서 편곡을 담당하는 퍼디 그로페(Ferde Grofe)에게 넘겼다. 훗날 '그랜드 캐년 모음곡'으로 유명한 작곡가가 된 그로페는 무서운 속도로 이 곡의 오케스트레이션 작업을 2월 4일에 마쳤다. 초연까지는 불과 여드레 남긴 시점이다.

 

랩소디 인 블루 (Rhapsody in Blue)는 1924년 2월 12일, 작곡자 자신의 피아노와 폴 화이트먼이 지휘하는 그의 악단 (Palais Royal Orchestra)에 의해 에얼리언 홀(Aeolian Hall in New York City)에서 '현대음악의 실험 (An Experiment in Modern music)'이라는 타이틀로 초연되었다. 연주회는 대성공이었다. 거쉰은 이 하나의 작품으로 현대음악 작곡가로서 확고한 명성을 얻을 수 있었다.

 

그 날의 감격을 화이트먼은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

"어떤 친구가 그날 우리 둘을 점심에 초대했다. 그러나 저녁 연주 때문에 어떤 음식도 목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에얼리언 홀의 연주회는 시작되고 곧 우리가 성공했음을 알 수 있었다. 청중은 마치 전기에 감전이라도 된 듯했다. 사람들은 몸 전체에서 무었인가를 느꼈다고 나는 생각했다. 비평가도 와 있었다. 모두 일류들 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적의를 보이지 않았다. 우리에게 호의를 품고 있었다. 정신이 없었다. 얼마동안 그대로 넋을 놓고 있다가 이윽고 나는 울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총보가 11페이지나 나가 있었다. 어떻게 11페이지나 지휘했는지 지금도 생각 나지 않는다. 연주회끝내고 나서 거쉰도 나와 같은 체험을 했다고 고백했다. 그 역시 울었던 것이다."

 

사실 이날은 일류 비평가 뿐만 아니라 스트라빈스키, 멩겔베르크, 라흐마니노프, 담로슈, 스토코브스키, 하이페츠, 엘마, 클라이슬러 같은 당대 최고의 음악가들이 초대석을 채우고 있었다. 연주회 다음날 어떤 신문은 '미국의 새로운 재능!'이라고 추켜 올리는가 하면, 다른 지면은 '미국인의, 미국인에 의한, 미국인을 위한 최초의 작품이 태어났다!'고 격찬한 비평도 보였다. 평소 독설가로 소문난 테일러와 올린 다운즈까지 거쉰의 재능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거쉰의 이름은 하룻밤 사이에 온 미국에 퍼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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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프랭크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