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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8. 26. 17:22

여군들의 수다 청구동 시절/육군사관학교2013. 8. 26. 17:22

 

 

태릉 육군사관학교에서의 일로 기억한다.

나는 육사 지휘부에서 근무를 했다. 지휘부요원들과 무슨 과의 현안을 놓고 의논하는 자리였다.

그런데 무릇 회의라는 것이 말하는 사람과 소극적으로 듣는 사람으로 나뉘어 진행되지 않는가.

진행하는 간부가 의견을 말하지 않는 요원들에게 의중을 물어도 그들은 자기 생각보다는 누구의 생각과

비슷하다는 식으로 짧게 대답할 뿐이었다. 더 이상 질문하는 것은 차라리 고문이었다.

결국 그 날도 몇몇은 열심히 말하고 나머지는 거수기 역할을 하는 것으로 끝났다.

 

회의실을 나오는데 선배하나가 차나 한잔하자고 해서 사관학교장 공관으로 가서 자리를 했다.

공관은 학교에서 제일 높은 언덕 위에 위치해 있어서 육사 건너 편 서울여대가 환히 내려다보였다.

차를 한 잔마시며 여대 캠퍼스를 창 밖으로 내다보며 선배와 무슨 얘기를 잠시 나누다가

그만 난 까무룩하게 소파에 기댄 채 잠들어 버렸다.

 

잠결에 "나 먼저 간다"란 아늑한 선배의 말에 잠꼬대하듯 대답을 하곤 얼마나 잠들었을까..

"엄마야"하는 외마디 비명소리에 퍼뜩 잠에서 깼다.

옆방 공관 비서실에서 근무하는 여군들의 호들갑이었다. 싱크대 아래에 쥐가 나타난 모양이다.

쥐를 본 지 십여 분이 지났는데도 계속 우는거다. 동료 여군이 달래주는 통에 간신히 울음을 그치곤

하는 말..자신은 '쥐'소리만 나도 졸도를 한다고.

 

커다란 소파 등받이에 기대어 졸고있었던 나를 비서실 여군들 중 아무도 눈치를 못 챈 모양이었다.

아마도 다들 돌아 간 것으로 여겼던 것.

"초등학교 시절, 여름방학 때 시골 할머니 집에 놀러갔다가 개학이 임박해서 올라왔는데

방학숙제를 하느라고 늦게까지 책상에 앉아있었어.

한꺼번에 몰아서 숙제를 하다가 밤에 출출해지는데 마침 할머니 댁에 가기 전에 책상서랍에 찹쌀떡을

넣어둔 것이 생각이 났어.

숙제를 하면서 익숙하게 서랍을 열어 손을 넣으니 말랑한 찹쌀떡이 만져져서 잡았는데...

글쎄 그게 쥐새끼였어. 그것도 갓난 쥐."

 

그러자 선배 여군 하나가 입을 연다.

"야, 그깟 쥐가 뭐 무섭냐? 우린 군인이야. 군인..

나 어릴 땐 재래식 변소아니냐. 변소 밑으로 쥐가 막 다녔다. 그래도 볼 일 다보고 살았어."

"아유.. 언니. 나 인제 화장실 못 가. 그 말 생각나서.."

여군들의 한바탕 웃어제끼는 소리에 난 계속 자는 척 해야만 했다.

거기서 부시럭 거리기만 하면 아마도 대왕쥐가 나타난 것으로 여겨 다들 졸도할까봐...

 

"언니.. 쥐도 사람하고 눈 마주치면 놀란다.

나도 한번은 밤에 설거지하는데 무슨 소리가 나서 보니까 쥐가 전기줄을 타고 가는거야.

나랑 눈이 마주치니까 못 움직이고 그냥 서 있어. 그때 쥐의 눈을 처음 봤는데 생각 밖에 이쁘더라."

"뭐? 쥐가 이뻐?"

"쥐가 이쁜지는 모르지만 똑똑한 건 사실이야. 너희들 쥐가 참기름 병에서 어떻게 참기름 꺼내먹는지 아니?"

이젠 또 동물의 왕국이 시작될 판국이다.

"어머. 쥐가 참기름도 먹어? 어떻게??"

"병을 쓰러뜨리고 뚜껑을 딴 뒤 꼬리를 집어넣어서 기름을 묻힌 후 꼬리를 핥는거야"

"정말? 직접 봤어?"

"그~~럼, 쥐꼬리가 왜 긴데"

 

그 뒤로도 쥐얘기는 줄줄이 이어진 것 같다.

난 빨리 학교본부로 돌아가야 하는데 여기서 움직였다간 필경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아예 소파에

길게 누워 낮은 포복자세로 엎드려있어야만 했다.

 

"어머,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이제 퇴근하자"

다들 가방을 챙기며 군복을 갈아입는 소리며... 그러면서도 계속되는 쥐이야기.

"네 머릿 속의 쥐의 이미지를 바꾸려고 노력해 봐. 미키 마우스도 있고 쥐를 귀엽게 그린 게 많잖아"

"그래. 우리나라에도 시골쥐와 서울쥐, 보물 구슬 찾아오는 쥐와 고양이 전설 이런 거 있잖아"

이젠 방향이 쥐 공포증 치유책으로 돌아갔다.

 

송석희중위가 마지막 파장으로 이런 말을 한다.

"얘, 쥐 얘기 하다 시간 가는 줄 몰랐네. 늬들 아까 회의 때는 아무 말도 안하더니 어쩌면 그렇게들 얘길

잘하니? 아유.. 여자들의 수다는 할 수 없어.."

"언니, 남자들도 얼마나 수다를 잘 떠는데요. 여자들이 차마시며 하는 얘기나 남자들이 차마시며 하는

얘기나 따지고 보면 다를 것 없는 거라구요. 아까 지휘부 남자들 차 마시며 소파에서 하는 얘기들..

살짝 들어보니까 가관이던데요. 뭘..."

"가관??? 뭔데..?"

"여자 꼬시는 얘기요. 쥐방울 만한 놈들이 그런 얘기만 하고..."

("?? 내가 언제..?")

졸지에 난 쥐방울이 되었다.

"남자들이 왜 말 많은 여잘 싫어하게요. 그만큼 지네들이 말 할 기회가 줄어들기 때문이에요."

 

그녀들이 퇴근 후, 간신히 오금을 펴고 비틀거리며 나오는데..

육사 앞 서울여대 여대생들이 한무리지어 교문을 나왔다. 수다를 피우며..

사람을 사회적동물이라고 하는 건 결국 수다적 동물이라는 뜻이 아닐까?

 

 

 

 

 

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  /  Air Sup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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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프랭크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