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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1. 30. 00:30

기억의 습작 청구동 시절/Jesus Abbey2013. 11. 30. 00:30

 

 

 

 

 

 

 

예수원의 겨울은 살벌할 만큼 추웠다.

서울 토박이로 시골생활을 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이곳에서의 겨울나기가 너무도 힘들었다.

한번은 너무도 추워 장작불을 떼고있는 부엌 아궁이에 가서 불을 쬐고있다가 들켜서 혼이 난 적이 있었다.

예수원 부엌엔 남자들의 출입을 금하고 있었는데 '다비'.. 나보다 한두살 어리다고 생각되는 자매가 있었다.

얼굴은 하얀데다가 덩치는 인형만한 자매가 힘은 얼마나 센지 산에서 나무를 하면 보통 남자들의 두 몫을

지게에 지고 내려올 만큼 힘이 있었지만 목소리는 가냘펐다.

엄격하고 철저한 규율 속에 지내는 예수원생활에서 다비는 총무일을 맡고있는 군기반장같은 여자였다.

발이 너무 시려워 일을 하느라 얼어버린 털신을 녹이려고 잠시 아궁이불을 쬐고있다가 그만 졸고만 것이다.

"안형제, 뭐해요"

그날 난 이불빨래하는 벌을 받았다.

그곳엘 방문한 손님들이 사용한 이불 호청을 다 뜯어서 빨래를 해야하는데 그 엄동설한에 세탁기도 없던

시절, 시냇가에 가서 언 손을 비벼가며 해야만했다.

 

다비는 쉬지않고 조잘댔다.

보통 그곳의 여자들은 수도자답게 말이 없고 조용조용한 편인데, 오죽하면 사람들이 그녀에게

'종달이'라고 불렀을까.

그녀의 가정사를 다 알지는 못하지만 아마도 어렸을 때 부터 혼자 지내왔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주변에서 일어나는 것들에 대해 알고싶은 욕망과 자신이 아는 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욕구가 남달리 컸던 것 같다.

 

때때로 가족들과 오랜 시간 떨어져서 지내며 울적해하면 그녀를 달래는 방법은 간단했다.

"다비자매님, 이것 좀 봐요. 이게 뭐에요?"하면,

그녀는 금방 울적함을 잊곤 "뭔데요"하고 참견을 했다.

그럴 때 별것 아닌 건데도 좀 심각하게 열심히 설명을 해주면 울적했던 일들을 완전히 잊고

거기 빠져버렸다.

다비는 궁금증이 많다보니 그녀의 사전엔 "이따 말해줄께요"란 없었다.

궁금한 것을 못참는 까닭에 수도자로서의 품위를 손상당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토요일은 휴무였다.

그날엔 모두들 개인시간을 가지면서 기타를 배우는 사람도 있었고 읍내에 볼 일을 보러가는 사람,

물을 덥혀서 묵은 때를 씻으며 목욕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그날 영어공부를 했다.

그곳의 서너명의 청년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주면서 나도 공부를 했었다. 다비도 끼어들었다.

네모난 큰 상을 하나 펴놓고 모두들 한 자리씩 차지하고 내가 내 준 숙제를 했다.

부엌에서 저녁밥을 다 지을 때 까지 그날 배운 것에 대한 숙제를 마쳐야했다.

그래야 그 상에서 저녁밥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다들 조용히 숙제를 하며 공부를 하는데 다비는 모르는 게 나오면 옆 사람에게 자꾸 물어보았다.

저녁시간에 쫓겨 모두들 빨리 숙제를 마쳐야 하는데 다비는 이 사람, 저 사람을 성가시게 하며

자꾸 질문을 하는거다.

보다못한 내가 눈짓으로 '나에게 물어봐요'했다.

내 옆으로 자리를 옮긴 다비는 자기 딴에는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될까.. 작은소리로 질문을 하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내가 자꾸 "뭐라구요?"를 반복하다가, 저녁식사 시간이 임박한고로 "이따 말해줄께요"라고 했다.

그런데도 다비는 상황파악을 못하고 또 물었다.

결국 짜증이 난 나는 "어이구, 바보" 소리가 나왔다.

그렇잖아도 치사한 생각이 들었던지, 아니면 자존심에 금이 갔는지..

다비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거칠게 책을 들곤 밖으로 나가 버렸다.

그리고는 저녁식사 시간에 다비는 밥상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다비는 매의 눈으로 나를 간섭했다.

지시받은 작업량을 채우지 못하면 작업일지에 하나하나 체크를 하곤 반드시 따져물었다.

사실 작업을 하다가 추우면 남자들은 부엌에 살며시 들어가서 언 손을 녹이며 잠시 쉬었었고 다비는

보고도 못 본 채 했었다.

난 억울한 마음에 씩씩거리며 이불빨래를 마쳤다.

얼어버린 손은 더 이상 내 손이 아니었다. 얼마나 춥고 힘들던지 눈물이 다 났다.

손을 비비며 내 방으로 돌아왔다.

방 안 내 책상 위의 소쿠리에는 김이 무럭무럭나는 옥수수가 담겨있었다.

 

 

 

다비 (맨 오른쪽 팔짱끼고 서있는..)

 


기억의 습작..

이런 가사가 있다.

"너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 볼 수 만 있다면..."

기억이란..

그때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보는거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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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e  (0) 2014.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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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프랭크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