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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자는 마흔 살을 두려워 한다. 마흔 살을 중년으로 들어가는 문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여자 나이 39살이 되면 초조와 불안이 엄습한다. 만나는 사람마다 나이를 물어보면서 꼭 토씨를 단다.

"와~ 내년이면 마흔이네?"

가르쳐주지 않아도 이미 아는 사실을 큰소리로 확인하는 이유는 뭘까? 너도 이제 화려한 시절 완전히 끝났다는 뜻일까?

폐기처분 되기 전에 어여 눈 낮추라는 조소일까?

 

아내는 마흔 살이라는 말만 나오면 심기가 불편해진다. 표정이 굳어진다.

"마흔 살이 뭐 어째서요?"라고 말을 하면 마치 노처녀 히스테리의 시작과도 같을 것이라는 불명예를 뒤집어 쓰기에

아무렇지도 않은 척 웃어 넘긴다.

아내는 여전히 청순 활달한 여자임을 보여주기 위해 이전보다 더 밝게 웃는다.

어여쁘고 건강했던 20대 시절에도 입지 않았던 미니를 엄동설한의 겨울에 꺼내 입어본다.

"봐라 난 아직 죽지 않았어!"라고 시위한 그날 밤 이부자리에 푹 파묻혀 꽁꽁 언 다리를 녹이며 훌쩍인다.

20대에도 느꼈던 추위인데 왜 39살에 느끼는 추위는 처량한 걸까?

20대 추위는 몸으로 오고 서른 아홉 살 추위는 마음으로 배어 든다.

 

장모는 아내 몸을 보더니 나잇살이 생겼다고 하신다.

아내는 치욕스러웠다. 체중계에 올라섰다. 여전히 51kg이다.

그럼 그렇지... 거울 앞에 섰다. 허리에 손을 얹고 미스코리아 포즈를 취했다. '물컹..' 골반뼈가 숨어버렸다.

나이들면 특정부위에 살이 모인다는 말이 언뜻 떠올랐다. 아내는 핑~~ 눈물이 났다.

다음 날 건강을 위해 헬스와 요가를 시작했다.

말이 건강이지 목적은 나잇살 집중 공략이다.

허리의 물컹거림은 마흔이 임박했음을 알린다.

너무 느리게 다가오던 크리스마스가 올해는 성큼성큼 큰 걸음으로 달려온다.

크리스마스는 "이제 너의 30대는 5일밖에 남지 않았다"는 판결문이다.

아..! 이대로 30대가 저물어가는가?

30대의 마지막 크리스마스가 다가올 때 우리네 여자들은 과감히 한국식 나이계산법을 포기하고 서양식 나이계산법을 수용한다.

그리고 이렇게 외친다. "난 아직 만으로 38살이라고..."

 

 

2.

남자는 쉬은 살을 두려워 한다. 쉬은 살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중년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남자에게 쉬은 살은 아픔과 함께 온다.

쉬은을 지난 남자 백 이면 백 명 모두 쉬은 병을 앓았다고 말한다.

쉬은이 되는 해에 감기 몸살, 독감을 된통 앓았다든지, 이유없이 혈압이 오르고 맥이 빠지는 경우를 경험했다고 한다.

50대 사망률이 가장 높음은 쉬은이 위기의 시기임을 입증한다.

 

남자에게 쉬은은 내복과 함께 온다.

현대 남성에게 내복은 늙음의 상징이요 정력의 지표이다.

친구가 내복을 입으면 "벌써 내복을 입느냐"고 빈정대면서 자신의 젊음을 뻐긴다.

하지만 이번 겨울은 유난히 춥다.

내복을 입고 싶지만 자존심이 허락치 않는다.

은근슬쩍 아내에게 한 마디 던진다.

"여보. 국제유가가 너무 많이 올랐어.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우리나라가 큰 타격을 입을 것 같아. 우리 집부터 에너지 절약을 합시다.

나도 귀찮지만 내복을 입어야 겠어."

에너지 절약이라는 거대한 명분과 함께 내복은 쉬은을 타고 동반자로 격상된다.

 

남자 쉬은은 시와 함께 온다.

지난 가을 낙엽의 바스락을 즐긴다. 퇴근 길 한 정거장 전에 내려 집까지 천천히 걷는다.

하늘을 보다, 쇼 윈도우를 보다, 가판의 귤을 만지작거리다 첫사랑을 떠올리며 쓴 웃음을 짓는다.

난 어느새 쉬은이 넘었다. 이루어 놓은 것이 하나도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갑자기 드니 놓쳤던 첫사랑이 더 후회가 된다.

쳐 박아 두었던 통기타를 찾아 들고 지그시 감은 눈으로 노래한다.

이문세의 "세월이 흘러 가면 어디로 가는 지 나는 알 수가 없잖아요"

그런데 화들짝 분위기를 깨는 외마디.. "청승 그만 떨고 진지 드세요"

 

젊은 유대인은 나이많은 랍비를 존경한다. 랍비를 존경하는 이유에 대해 젊은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한다.

"랍비에게는 답이 있습니다."

나이듦이란 답을 알아가는 것이다. 정답과 가까워지는 지혜이다.

여자 마흔, 남자 쉬은.. 그 만큼 존경과 가까워지고 있다는 뜻 일게다.

이십대, 삼십대에 만나서 우린 이제 마흔, 쉬은이 넘었다.

 

 

 Love / John Lenn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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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프랭크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