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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길목 / 김평엽


가을입니다.
하늘이 참 푸릅니다.
살갗에 부딪는 바람과
촉촉한 낙엽이 좋습니다.
지나치는 사람의 깊은 눈길이 좋습니다.
선술집에 들릅니다.
'황진이'를 시켜
조용히 가을을 마십니다.
가을 향기가 마음에 찰랑거립니다.
단풍이 뺨을 물들입니다.
혼자여서 좋습니다.
외로워 좋습니다.
낙서처럼 길을 걸으며 노래를 읊조립니다.
그저 좋습니다.
아무도 없습니다.
푸르른 하늘과 플라타너스 넓은 낙엽들.
마주치는 사람도 없이 긴 골목길에
아, 벌써 가을입니다.


8월의 늦여름에서 9월의 초가을로 넘어가는 사이...

다음 주 추석을 앞두고 모든 것이 풍성해서 더 외로운...

그 만큼의 허전함을 서늘한 바람 사이로 느껴야 하는 계절이 9월의 초가을이 아닐런지...

 

하지만 혼자여도, 외로워도 가을이여서 좋다는 시인의 말이 가슴에 와 닿는건

이 계절을 사랑할 수 있는 그 만큼의 여백이 있기 때문일거다.

 

젊은 시절의 추억과 떠나간 사랑, 필름처럼 지나가는 내 모습...

뜨거운 커피 한 잔과 추억이 어려 있는 노래가 있다면...

그 나름의 미소를 지을 수 있는 9월의 가을이다.

 

 

맑은 미소가 담겨진 아가씨의 작은 환호성처럼...

그저 좋은 가을

아, 벌써 가을이다.

 

서늘한 바람이 창틈으로 스며드는 9월의 밤.

< 프랑스 19세기 낭만주의 시선집>을 다시 꺼내 읽으며

에밀 길즈가 연주하는 브람스 <피아노 콘첼토 No.1>과 함께 한다.

 

 

 




 



  Emil Gilels, piano
Berlin Philharmonic Orchestra, Eugen Jochum (conductor)

 
I. Maestoso 
  II. Adagio 
III. Allegro non troppo


 

 

 

1악장 - 마에스토조...

전형적인 소나타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는 악장.
브람스의 절제된 감성이 장대한 악상의 피아노와 관현악 연주로 그려진다.
서주의 팀파니와 가요풍의 제2 주제선율이 인상적이다.

2악장 - 아다지오...

평생동안 신앙을 갖지 않았던 브람스는 이 악장을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에게 축복이 있을지어다'라고 표현했는데...
슈만의 죽음을 애도하는 뜻이 우수에 찬 선율로 나타난다.

3악장 - 론도 ; 알레그로 논 트로포...

지나치지 않을 만큼 빠르게 연주하라는 악상 기호에서 느껴지듯이
젊은 브람스의 사색적인 면모와 삶에 대한 진지한 태도가
경쾌한 론도 풍의 리듬에 실려있다.


 

때가 되면 높이 높이 떠있는 구름이 가을임을 알리듯,

젊은 날 브람스의 꿈과 이상이 짙게 배어있는 이 곡은

브람스의 사랑이 진심이었음을

대변하고 있는 듯 하다.

 

 

가을로 가는 길 / 박일주 


 

 

며칠 전, 길가의 은행나무를 보며 여의도를 걷는데 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가을 사랑은 길지가 않다고...

가을이라는 계절이 짧아서라나.

그 말 맞는건지...

 

가을은 클래식이 좋아지는 계절이다.

가을은 모두가 시인이 되는 계절이기도 하다.

가을은 누군가 많이 그리워지는 계절이구...

물론 가을은 사랑의 계절이기도 하다.

그래서 가을은 사랑의 가슴앓이를 하는 계절이라고도 한다.

올 가을엔 시집을 많이 읽으면서 함께 가슴앓이 하자.

 

 

가을로 가는 길에 듣는 브람스의 곡들은

가는 계절을 아쉽게 만들고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가을을 예감케 한다.

여름과 가을의 경계선은 브람스의 우수에 찬 선율과 하나가 되곤 했다.

 

음악에 빠져드는 순간만큼 순수해질 때가 있을까?

브람스는 언제나 그랬듯이 나를 고독의 세계로 이끌고

지난 사랑의 의미를 돌아보게 만든다.

 

어디 브람스 뿐이던가...

고전음악과 문학작품은 나의 연인이자 이상이었으며 감성의 반려자였다.

시인 폴 발레리가 그려낸 연인들의 모습 또한 그러하다.



애정의 숲


우리는 순수한 것을 생각했다
길을 따라 나란히 걸어가면서
어느 이름모를 꽃들 사이에서
우리는 말없이 손을 잡았다

우리는 약혼자처럼 걸었다
목장의 푸른 밤 속을 단 둘이서
그리고 우리는 천국의 열매를 나눠 먹었다
미친 사람들이 좋아하는 저 달도

그리고 우리는 죽었다
이끼 위에 누워 단 둘이
아주 멀리서 친밀하게 소근대는
저 숲의 부드러운 그늘 아래에서

우리는 울고 있었다
저 하늘 높이 무한한 빛 속에서
오~ 사랑스런 나의 말없는 반려자여 ~


- 폴 발레리 -


발레리는 사랑과 죽음이 한 공간 속에 존재한다고 생각했나 보다.

분명 아름다운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는데도...

죽음과 고독의 그림자가 그 안에 드리워져 있으니 말이다.

 

누구나 사랑에 빠지면 순수한 마음의 창을 지니게 되는 법.

널 사랑해 ~ 라고 말하지 않아도 상대의 마음을 손금 보듯 읽을 수 있고

눈으로 보는 것 모두가 아름답기만 하다.

 

발레리의 시처럼 삶과 죽음을 함께 나누려 했고

고통의 눈물을 함께 흘렸던 사람을 다시 기억케 하는...

브람스의 무곡은 그런 것들을 되돌아 보게 만든다.

 

 

 




 

Hungarian Dance No. 1 in G minor
 
Leonid Kogan, violin


Silke-Thora Matthies, Christian Kohn, piano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No. 1 in G minor 바이얼린 버젼이 고독한 모습으로 슬픈 노래를 부른다.

그의 내면적인 감정의 흐름이 여린 가슴 속으로 파고든다.

어쩌면 브람스는 이렇게 절규하고 있는 것 아닐까?

 

어느 누가 날 위해

서럽게 눈물을 흘려줄 수 있단 말인가...

 

어느 누가 날 위해

위로의 노래를 불러줄 수 있단 말인가...

 

어느 누가 날 위해

쓰디쓴 고통을 떠안을 수 있단 말인가...

 

 

브람스는 평생토록 자신이 그려놓은 악상 속에

고독의 상처를 음악의 선율로 승화시켜 놓았을 뿐만 아니라

눈물같은 가련한 추억까지 심어 놓았다.

 

그것은 지극히 순수하며 아름다운 정서.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

그의 음악은 고독한 영혼들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지 않은가.

 

브람스의 선율은 사랑으로 아픈 계절 - 지나간 여름을 위로하고 있다.

돌이켜 보면, 망각이란 단어는 우리를 위해 존재한게 아니었다.

그리움의 상처는 타인이 낸 것이 아니라 바로 내가 낸 것 아니던가.

 

 

 

 

 

지난 날, 수많은 계절을 맞이하고 떠나 보내면서도

그 계절이 가져다주는 서정을 내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언제나 나와 함께 했던 계절인데도 말이다.

 

아 ~ 여름이여..

나를 숨쉬게 하고 나를 잠들게 했던 카론 같은 존재여..

작은 내 품 안에서 가쁜 숨을 고르며 안식하기를...

 

브람스의 피아노 콘첼토의 선율 속에

여름은 바람에 실려 어디론가 사라지고 있는데...

 

지금 나는

어느 순간 왔다가 불.꽃.처.럼 사라져 버릴

가을을 예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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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프랭크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