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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당시 점령군 사령관이었던 맥아더 장군이 동경에 들어갔을 때이다. 그는 일본 국민들로 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아마도 점령군 사령관이 피점령국가의 국민들로 부터 그처럼 환영을 받은 역사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비록 자신의 나라가 패했지만 동경 시민들은 시내가 들썩일 정도로 그를 환영했다. 일본 천황이 맥아더 장군에게 만남을 청했다. 그때 맥아더 장군이 유명한 대답을 했다. "나는 인간인데 스스로 신神이라고 하는 일본의 황제와는 어떤 이야기도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 神하고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안 만나겠습니다. 정 만나야 하겠다면 먼저 '나는 신이 아니다'라고 방송을 통하여 분명히 밝히십시오." 부득불 일본 청황은 방송을 통하여 국민들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나는 더 이상 신이 아닙니다. 나는 인간입니다."

 

 

여기에도 문제가 있다. '나는 더 이상' - 이 어찌된 말인가? 그는 본래부터 신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사람이었다. 어떻게 오늘부터 사람일 수가 있는가? 정신나간 소리다. 망언이다. 그 일이 있은 다음, 한 사진기자가 청황이 낚시질하는 모습을 찍어 신문에 냈다. 그 사진은 세계적으로 대보도되었다. '천황이 낚시질을 한다' - 그도 사람이라는 것이다. 흔히 권력을 가진 자들은 '나는 신이다'라고 스스로 신격화하기를 좋아한다.

'나는 특별하다.' ' 내 말이 곧 법이다.'라고 생각한다. 권력을 향한 인간의 끊임없는 탐욕.. 인간의 권력이란 어디서 부터 오는걸까.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영국의 왕 윌리엄 4세가 죽던 날 밤, 궁중에서 자고있던 한 처녀가 있었다. 이튿날 아침 그 처녀가 갑자기 왕으로 간택이 된다. 그 처녀가 바로 빅토리아여왕이다. 그녀는 64년 동안 재위하면서 대영제국 황금시대를 이루었다. 단지 왕이 죽던 날 밤 궁중에서 잠을 잔 것 밖에는 없는데 왕으로 간택이 되었던 것이다. 이 일로 보면 권력구조라는 것이 단지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거 같다.

 

전세계가 일본의 과거역사에 대한 그릇된 인식에 대해 비판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들의 과거의 오점을 인정하지 않고있다. 심지어 어제는 군국주의의 상징인 자살특공태 '가미카제'의 유서까지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신청을 하겠다고하니 그들의 역사적 가치관은 어디에 있으며, 일본의 망언은 어디서부터 시작이 된걸까. 아마도 일본의 위정자들은 국가 경제권력을 통해 세계를 향해 내뱉는 자신들의 생각과 말들은 곧 법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추석연휴가 시작되기 며칠 전, 나는 아주 인상깊은 사진 한장을 보게되었다. 나치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국제 홀로코스트 기념일' 행사가 지난 1월 27일 독일 수도 베를린의 연방의회에서 열렸다. 모든 의원들이 기립했다. 1분간 묵념이 이어졌다. 나치 정권의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였다. 이날은 2005년 유엔이 정한 '홀로코스트 기념일'이었다. 1945년 당시 소련군이 독일 아우슈비츠에 진주, 강제수용소를 해방한 날을 기린 것이다. 하지만 독일은 96년부터 이미 로만 헤어초크 대통령의 제안에 따라 자체적으로 이날을 기념해 왔다. 여기까진 예년과 다를 바 없는 추모식이었다. 그러나 곧 달라졌다.

 

 

노르베르트 람메르트 독일 하원의장의 팔에 의지해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걸어 들어왔다. 요아힘 가우크 대통령은 바로 옆에서 걸으며 노인을 챙겼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뒤따랐다. 노인은 일종의 '내빈석'격인 앞자리, 그중에서도 한가운데 앉았다. 노인은 '레닌그라드(현재의 상트페테르부르크) 봉쇄'의 생존자이자 작가인 다니엘 그라니(95)이었다. 독일군은 1941년 9월 구 소련 레닌그라드 외곽을 점령했다. 그로부터 시작된 900일간의 봉쇄 기간 중 10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공습과 포격 외에도 괴혈병, 기아, 혹독한 추위가 죽음을 불러 왔다. 대부분 희생자는 어린이와 여성들이었다.

 

"독일군들은 레닌그라드 안에서 많은 노약자들이 굶주림으로 쓰러져 죽어간다는 사실을 알고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장장 9백일 동안 포위를 풀지않았습니다. 군인들은 군인들과 싸워야 하는 것 아닌가요?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마른 장작처럼 굶주림과 추위에 바짝 말라버린 시신들을 우린 마차에 실었습니다. 단지 우리가 항복하기를 바라면서 무수한 양민들이 죽어가는 것을 그대로 내버려 둔 독일을 나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노작가의 연설 내내 독일 의원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들었다. 그리고 그의 연설이 끝났을 때 독일 연방의원들은 모두 일어서 박수를 쳤다. 엄숙하면서도 단호한 박수였다.

 

* 메르켈 독일 총리(오른쪽)와 가우크 독일 대통령(가운데)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끌려갔던

95세의 러시아 작가 다닐 그라닌 씨(왼쪽에서 두 번째)를 쳐다보고 있다.

 

 

이날 가우크 독일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냈다. "독일 나치에 의한 잔혹한 전쟁과 레닌그라드 사람들의 고통에 대해 독일이 역사적 책무가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우린 전쟁 후 고통을 겪고 있는 생존자에겐 연민을, 당시 손실에 대해선 고통을 공유한다"는 내용이었다. 수치스러운 과거 침략 역사를 부인하고 지워버리려는 일본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들이었다.

 

예전 대학다닐 때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란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역사를 바라보려면 과거와 오늘, 미래를 함께 봐야한다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다시 한번 읽으면 느끼는 것이 참 많은.. 지금의 이 시대를 정확하게 진단하는 insight가 엿보여서 교훈이 되는 책이다. 그런 면에서 독일은 입으로가 아니라 진심어린 행동으로, 권위가 아니라 반성하는 국가적인 책무의식과 삶으로 세계에 사표師表가 되는 나라이다. 먼저 살았던 뼈아픈 지난 날을 반성함으로 뒤를 잇게만드는 전세계의 선생先生같은 국가이다.

 

 

"이제 아우슈비츠는 없다. 그러나 세계는 아직 그 교훈을 얻지 못했다. 세계 곳곳에서 서로 싸우며 죽이고 있다. 오늘은 기념일이기 때문에 말하지만 내일이면 이를 잊을 것이다."

- 홀로코스트 생존자 프란치스크 요제피악

 

"무엇을 해도 내 실수를 보상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나로선 용서를 빌 수 있을 뿐이다. 젊은이들에게 내가 바라는 것은 실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결코 잊지말고, 나치의 유대인 대량 학살은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하는 '홀로코스트 거짓말쟁이'가 되지 말라는 것이다."

- 아우슈비츠의 나치 친위대원 출신 83세의 오스카 그뢰닝 씨가 60년 만에 죄를 고백하면서

 

 

 

인류사 최대의 비극으로 기억되고 있는 제2차 세계대전, 독일이 구 소련의 레닌그라드를 침공하기 꼭 2년 전인 1939년 9월 1일 독일군은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를 무력 침공했다. 그때 폴란드에서 가장 촉망받던 젊은 피아니스트의 파란만장한 삶이 시작되는데... 오래 전 그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져 개봉되었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 만든 <피아니스트 - The Pianist>가 바로 그것이다.

Chopin,  Nocturne in C-sharp Minor

 

전운이 감돌던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 쇼팽의 <녹턴 C-sharp minor>가 흐르고 있다. 그 곡을 연주하는 천재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라프 스필만. 그는 유대계 폴란드인으로 국영 라디오 방송국에서 쇼팽의 곡을 연주하던 중 독일군에게 폭격을 당하자 연주를 마치지 못한 채 피난길에 오른다. 나치는 폴란드를 침공한 뒤 유대인들을 핍박하고 결국 그의 가족들은 가스실로 향하는 기차에 강제로 실리는데... 스필만은 자신을 알아보는 지인들에 의해 극적으로 구출된 뒤 나치의 눈을 피해 이곳 저곳 숨어 다니다가 폐허가 된 게토의 어느 건물 다락방에 은신한다.

 

 

독일군 점령지 안에서 도망다닌다는 것은 연약한 감성을 지닌 그로서는 너무도 고된 일. 그러나 스필만은 살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버텨 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먹을 것을 찾아 아래층으로 내려온 스필만은 독일군 장교에게 그만 발각되고 마는데... 그가 유대인임을 눈치챈 독일군 장교는 싸늘한 표정으로 그에게 신분이 뭐냐고 묻는다. 스필만은 떨면서 자신이 피아니스트라고 말하자 독일군 장교는 아무 곡이나 연주해 보라고 명령한다. 스필만은 이 영화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이기도 한 지상에서의 마지막 연주가 될지도 모를 연주를 하기 시작한다. 연주가 끝나면 총살을 당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혼신의 힘을 다한 연주...독일군 장교는 스필만의 연주에 감동받아 그를 살려주었음은 물론 그 곳을 떠날 때 자신이 입던 외투와 빵까지 선물로 준다.

 

영화 <피아니스트>는 <녹턴 C-sharp minor>를 비롯하여 <녹턴 E minor>, <녹턴 C minor>, <발라드 No.1, No.2>, <왈츠 A minor>, <전주곡 E minor>, <안단테 스피아나토 G major>, <그랜드 폴로네이즈 E-flat major>, <마주르카 A minor> 등 쇼팽의 주옥같은 피아노 작품들로 가득하다. 1911년 태어난 스필만은 바르샤바 음악원, 베를린 예술아카데미에서 피아노와 작곡을 공부했으며, 전쟁이 끝난 1945년 폴란드 방송의 음악감독으로 활동을 재개했다. 그 후 작곡가, 연주자로 전세계를 무대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다가 지난 2000년 8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영화 <피아니스트>는 죽음과 삶이 교차하는 전쟁의 포화 속에서 허기와 추위 그리고 고독과 공포를 이겨내고 굳굳하게 일어선 인간 승리의 드라마요, 격동기를 살아간 한 음악가의 자서전이다. 이 영화에 나타난 쇼팽의 작품들은 조국 폴란드가 러시아의 침공을 받았을 때 쇼팽 자신의 침울한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그의 곡 왈츠 A단조를 들으면 곡의 형식은 왈츠이지만 암울한 조국과 가족들의 대한 걱정이 담겨진 애가哀歌아닐까..

 

Chopin, Ballade No.2 In F Major Op.38

Chopin, Waltz No.19  in A minor

Chopin, Prelude in E-Minor op.28 no. 4

Chopin, Andante Spianato In G Major

 

Chopin, Andante Spianato & Grande Polonaise Brillante, Op. 22 in E Flat Maj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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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프랭크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