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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여가활동을 할 수 있는 여러가지 시설들과 환경이  잘 조성되어 있지만 내가 대학 다닐 때만 해도 대학생들이 갈 수 있는 곳은 당구장 아니면 음악감상실이나 영화관 밖에 없었다.

 

대학교 2학년인가?, 레포트준비를 하고있는데 친구한테 전화가 왔다. 자기도 레포트를 쓰다가 나한테 물어볼 게 있어서 했다는 거다. 나는 묻는 말에 대답을 해주고는 레포트를 작성하는 동안 내가 겪었던 스트레스와 어려웠던 점을 곁들여가면서 안달하지 말고 느긋하게 마음 먹는게 필요하다고 말해줬다. "태현아! 난 레포트과제가 있을 땐 영화도 보고, 친구들과 당구도 치면서 머리를 식혀. 그러면 능률이 더 좋아"내 조언을 듣던 친구는 애초에 전화를 건 목적보다 더 실질적인 뜻밖의 도움을 받았다며 갑자기 목소리가 밝아지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고맙다고 우리 영화나 보러가자는 것이다. 자기가 영화표를 살테니까 돈 걱정은 말라고 하면서..

당시 개봉관은 종로 3가와 퇴계로 2가, 그리고 광화문에 몰려있었다. 공짜로 영화를 구경시켜준다는 친구의 말에 얼씨구나 하면서 광화문 4거리에서 친구를 만났다. 지금의 동화면세백화점 자리에 있던 국제극장은 1800석 규모의 서울에서도 제일 큰 극장이었다. 가난한 대학시절에 이런 일류극장엘 간다는 것은 1년에 두 세번 밖에 기회가 없었다. 지금 생각하니까 돈많은 친구 덕분에 영화도 많이 보고 연주회에도 자주 갔던 것 같다. 광화문 국제극장에선 한 영화가 대박이 터지고 있었다. 영화 <대부>의 주인공 말론 브란도 주연의 <지옥의 묵시록>이란 영화가 상영 중이었다. 한창 젊은 혈기에 이런 전쟁영화는 없어서 못보는 영화였는지라, 더우기 조금은 잔인한 장면 때문이었는지 미성년자 관람불가 딱지가 붙었었고, 중간고사가 막 끝난 대학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국제극장 앞으로 밀려 들어와 옛 경기여고 들어가는 길 입구까지 길게 줄을 늘어서 있었다. 지금은 대부분 예매제로 영화티켓을 구입하기에 당시에나 볼 수 있었던 진귀한 풍경이었다. 지금은 이미 다 헐리고 그 자리에 초현대식 동화면세점빌딩이 들어서 있으니 "산천은 의구한데 건물은 간데없네"이다. 

오랜만에 극장 안에 들어서서 웅장한 돌비시스템(80년대 당시, 영화의 잡음을 줄이기 위해 개발된 최신식 잡음저감 회로 음향시스템을 말한다)에 매료되어 부엉이 눈처럼 크게 뜨고 영화를 보던 중, 나를 크게 매료시켰던 영화음악이 있었다. 고막을 찢을 듯한 헬리콥터의 기계음과 힘없이 지상에 서있는 것들에 대한 융단 폭격의 굉음, 그리고 웅장하게 울려 퍼지는 바그너의 『발퀴레의 비행(Ride of the Valkyries)』 이들이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장엄한 협주곡을 배경으로, 헬리콥터의 힘겨운 날개짓과 폭격의 검붉은 불꽃이 화면을 가득 채웠었다.

영화 <지옥의 묵시록>은 <대부>와 더불어 코폴라 감독의 대표작인 이 작품은 미국 영화역사상 손에 꼽히는 명작이라고 한다. 내용은 베트남 전쟁 중 밀림 한 가운데 자신의 왕국을 구축한 과거 전설적인 군인 커츠대령(말론 브란도)을 제거하라는 임무를 부여받은 윌라드 대위(마틴 쉰)의 여정을 다뤘다. 영화는 베트남전이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전쟁영화라기보다 미스테리물에 가까웠다. 베일에 쌓여 있는 커츠대령의 행적을 쫓아가는 과정에서 그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을 하나 하나 풀어나가는 식이다.


결국 관객이나 등장인물들이 맞닥뜨리게 되는 것은 광기로 얼룩진 거대한 공포다. 특히 미군들이 마치 게임을 즐기듯 바그너의 『발퀴레의 비행』을 요란스럽게 울려대며 헬기로 베트콩 마을을 공격하는 모습은 두고두고 회자되는 영화사에 길이 남는 명장면이다. 또 커츠대령의 근거지와 그곳에서 벌어지는 원주민들의 축제, 전장에서 파도타기를 원하는 미군 지휘관의 모습은 악과 선의 구분없이 광기에 매몰된 인간 본연의 모습을 보여준다.

헬기비행장에서 꾾임없이 뜨고 내리는 군헬리콥터의 요란한 프로펠러 소음에 정신이 없었던 난 아주 재미있는 장면을 만나게된다. 지옥과도 같은 전장에서도 파도타기를 즐기는 서핑매니아 킬고어대령이다. 그는 카우보이모자에 머플러를 목에 두른, 어찌보면 군인이라기 보다는 보이스카웃같은 우스광스러운 모습의 사람이다. 해변에 베트콩들의 포탄이 떨어져서 서핑을 즐길 수 없게 되었다며 투덜거리던 그는 베트콩마을을 공격하기 위해 헬기에 탑승을 한다. 그런데 그가 타고있던 헬기엔 오디오시스템이 장착이 되어있는거다. 바닷가를 따라 공격목표를 향해 비행하던 그는 돌연 승무원에게 음악을 틀 것을 지시한다.

 

독일 나찌의 히틀러는 바그너 매니아로 알려져있다. 나찌군을 사열할 때나 중요한 작전을 짜기 전엔 바그너의 관현악음악을 틀어놓았다고 한다. 아마도 킬고어대령도 바그너의 음악을 틀어놓으면 전장에서 더 용맹스러워졌는지는 모르겠다. 해안선을 따라 날아가는 헬기편대와 적당히 잡아주는 돌비시스템의 영향으로 헬기소음, 그리고 악을 쓰며 명령하는 킬고어대령, 그 모든 것을 배경음악?으로 삼으며 울려퍼지는 바그너의 『발퀴레의 비행』.

 

히틀러가 이 곡을 듣고 바그너를 숭배하기 시작했다는 『발퀴레의 비행』 위대한 독일인 바그너는 전 유럽과도 바꿀 수 없다며 그토록 히틀러는 바그너를 찬양했다. 유럽정복에 나선 히틀러가 나찌 독일군을 하나로 모으기위해 바그너의 관현악을 이용했다는 설이 있을만큼 힘찬 바그너 오페라 "니벨룽겐의 반지" 중에 나오는곡이다..헬기편대의 진군을 알리는 트럼펫과 묵직한 트럼본소리, 그리고 병사들의 발걸음을 재촉하는 듯한 작은 북소리, 폭격을 당해 우왕좌왕 도망치기 바쁜 베트콩들의 모습을 그리는 듯 어지러지는 바이올린이 뒷받침이 되는 이 곡을 오늘 아침에 선물하고싶다. 활기찬 아침이길..


Wagner/Die Walkre: The of the Valkyries
Karl Böhm, Bayreuth Festival Orche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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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프랭크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