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 짝사랑 음악에 부쳐/클래식 칼럼2013. 6. 21. 07:54
어제 아침 뉴스에 "조앤 롤링"에 대한 기사가 나왔다. 지구 상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책이 있다면 그것은 그녀의 책『해리 포터 시리즈』라고 한다. 지금은 영국 여왕보다 더 부유한 작가 조앤 롤링은 한때는 정부 보조금으로 가난하게 살아왔던 이혼녀였다고 하니, 이보다 더 드라마틱한 인생역전이 어디있을까. < 해리 포터> 시리즈를 쓴 영국의 동화작가 조앤 롤링은 여성 특유의 섬세함을 바탕으로 동화적인 마법의 세계를 참 재미있게 그려냈다. 10여 년전 그녀의 원작을 통해 영화화된 해리 포터 시리즈 제 2탄의 제목은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이다.
나는 어릴 적 나만이 들어갈 수 있는 비밀한 다락방이 있었다. 누구나 어릴 땐 비밀의 방을 상상하며 그것을 낙서장에 그려보곤 하는데...난 그 영화를 보면서 어린 시절 다락방에 올라간 느낌이었다. '비밀, Secret'이란 단어는 신비한 느낌도 들지만 한편으론 누구나 그 실체를 파헤쳐보고 싶다는 충동을 불러 일으킨다.
▒ 짝사랑
비밀 중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것을 꼽는다면, 그것은 아마도 짝사랑이 아닐까 싶다. 나도 학교다닐 때 심하게 짝사랑을 한 적이 있다. 청와대 근처에 살고있는 그녀의 집까지 마치 스토커처럼 뒤를 따라갔던 적이 있다. 사랑, 그것도 짝사랑에 빠졌을 때의 불타는 마음은 쉽게 누구에게 말하기도 어렵고, 스스로 감당하기도 어려운... 그러나 사랑에 빠진 그 순간보다 더 아름다운 시절은 없을게다. 그러나 아쉽게도 짝사랑이 성공할 확률은 거의 없다. 그래서 짝사랑은 아픈 것인가 보다.
이태리 작곡가 토스티의 가곡 중에도 <비밀 - Segreto>이라는 곡이 하나 있다. 【중학교 3학년 클래식 감상모음 2】에도 나오는 곡이다. 짝사랑에 빠진 어느 처녀의 애절한 사연이 담긴 이 노래는 이태리 가곡 특유의 선율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Music / Edward Charles Hallé
Segreto
Ho una ferita in cor, Che gitta sangue
내 가슴엔 고통스러운 상처가 하나 있다네
che a poco a poco mi fara morir
그것은 나를 조금씩 죽게 할 것이네
Trafitta dal dolor, l'anima langue
고통스러운 상처로 내 영혼은 약해지고 있지만
amo e il segreto mio non posso dir
말할 수 없는 이 비밀을 난 사랑하네
Bello come la luce a me d'accanto
내 가까이에 있는 빛처럼 아름답게
il segreto amor mio veggo talor
내 사랑의 비밀을 보여주고 있네
ei passa e sento in me come uno schianto
그것들이 내 마음에 격정적으로 흐르네
un impeto di gioia e di dolor e di dolor
기쁨과 고통의 흥분을
Dal primo giorno non ho mai sperato
처음 만난 날부터 나는 원치 않았네
il segreto fatale ho chiuso in me,
운명적인 비밀을 내 속에 가두어 버렸네
ed egli non sapra d'essr amato
그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 그는 알지 못하리
mi vedra morta e non sapra perche
죽은 나를 보리라, 까닭도 모른채
Eppur se il veggo aprir vorrei le braccia
그렇지만 나는 그에게 팔을 펼쳐 보이며
dirgli che l'amo e che il mio cor gli do.
그를 사랑하며, 내 마음을 모두 주었다고 말하고 싶네
vorrei fissarlo arditamente in faccia
용기를 내어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 싶네
Ma il cor mi trema, e gli'occhi alzar non so, mi trema il cor
그러나 가슴이 떨려 눈을 뜰 수 조차 없네, 가슴이 떨려
Ho una ferita in cor che gitta sangue
내 마음엔 고통스러운 상처가 하나 있다네
che a poco a poco, Mi fara morir
그것은 나를 조금씩 죽게 할 것이네
- Tosti -
가사 뿐 아니라 가락도 정말 애절하지 않은가... 흔히 '짝사랑 = 일방적인(One-sided) 사랑'이라고 말하는데, 그보다는 '짝사랑 = 보답없는(Unrequited)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그렇다. 보답받길 원하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닐지도 모른다. 짝사랑이야말로 가장 순수한 마음으로 부터 솟아나오는 자연스런 감정이 아니던가. 그러나 애타는 그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평생토록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하는 경우도 많다.
Morning Music / Dante Gabriel Rossetti
음악은 언제나 동경을 품고있어야 한다.
이 세계를 넘어서는 동경. - 구스타프 말러
▒ 음악에 대한 짝사랑
짝사랑은 이성 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따지고 보면 고전음악 작곡가들은 우리에게 일방적인 그리고 보답없는 사랑을 준 것과 다름없다. 클래식 음악 감상 역시 음악에 대한 짝사랑이 없다면 감동을 체험하기가 좀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고전음악을 아름답다고 말하는 까닭은 곡마다 다른 칼라... 즉, 평온함과 격정이 공존하며, 낭만적인 선율에서 풍겨나오는 지적인 분위기와 함께 다양한 악상의 흐름 속에서 질서와 어울림의 균형감각을 동시에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애타는 사랑을 경험하지 않은 음악가가 아름다운 선율을 그려낼 수 있었을까? 불가능한 일 일 것이다. 모짜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브람스, 쇼팽, 슈만...그들은 어쩌면 음악이라는 짝사랑의 화원에서 꽃을 가꾸는 심정으로 음악을 작곡한 것이리라 여긴다. 보답없는 사랑이다.
『파파게나 & 파파게노』
모짜르트 오페라『마술피리』중에 나오는 유명한 곡이다. 새잡이 파파게노는 마술피리에서 극의 재미를 배가시키는 코믹한 캐릭터이다. 파파게노는 자신처럼 새의 형상을 한 천생배필 파파게나를 만나 뜨거운 사랑의 열정에 빠지지만 환경의 어려움 때문에 헤어지고 만다. 절망한 파파게노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순간 마법의 힘에 의해 다시 파파게나가 나타나고 두 사람은 격정적인 재회를 한다. 너무나 놀랍고 기쁜 나머지 서로의 이름을 수없이 더듬으며 부르는 격정적인 감성과 재치가 있으면서도 듣는 이로 하여금 흥미 만점의 이중창이다.
우리나라엔 【선명회합창단】이라는 세계적인 합창단이 있다. 윤학원씨가 지휘자로 있을 때 작은 누나가 합창단 반주자로 활동을 한 적이 있다. 한번은 서울 등촌동에 있는 선명회연습실에 누나의 어떤 일 때문에 찾아갔던 적이 있다. 연습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한창 연습하고 있던 곡이 있었다. 그동안 듀엣으로만 듣던 곡을 합창곡으로 편곡해서 부르는데, 다수의 소녀단원들과 소수의 소년단원들이 다채로운 의상을 입고 퍼포먼스를 하면서 연습을 하고있는 것이다. 얼마나 호흡이 잘맞고 남녀 소년소녀들의 가녀리면서도 때때로 깔리는 묵직한 보이스가 아름답게 하모니를 이루는지.. 넋을 잃고 말았던 기억이 난다. 그 곡이 지금 들려지는 『파파게나와 파파게노』이다. 때때로 고전음악은 나로 하여금 넋을 잃게 만든다. 그 클래식 음악을 나는 짝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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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cilia Bartoli and Bryn Terf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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