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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이 전쟁이 났다.

들짐승과 날짐승이 한판 붙게 되었을 때 가장 난처한 건 누굴까?

박쥐다.

들짐승이 보면 날짐승이고, 날짐승이 보면 들짐승같아서 결국 여기도 못 끼고 저기도 못 끼기 때문이다.

사람도 그런 박쥐 신세를 겪어야 하는 수가 있다.

특히 난 살아오면서 누구 못지않게 박쥐의 설움을 톡톡히 맛본 셈이다.

 

 

난 대학 때 1년 재수를 했다. 1년을 꿇는다는게 당시엔 참 서글펐던 기억이다.

대학에 갓 입학해서는 들어야 할 교양과목이 많았다.

시간표를 스스로 짜서 수강 신청을 해야 하는 통에 개강 전에는 그야말로 수강 신청 전쟁이 벌어졌다.

1학년 부터 4학년까지에 걸친 신청자가 다 몰리니 경쟁이 치열했다.

심리학 신청이 끝나고던가? 같은 과 친구 하나가 '좋은 선배 하나를 알게되었노라'하면서 날 소개하겠단다.

학교 본관 입구에서 기다리는데 "형. 여기에요"하는데 보니까 내 고등학교 동창이 아닌가.

"어, 너 000 아니냐?"

그 친구는 반색을 하는데 난 그러질 못했다.

"너 이 형 알아?"

소개해 주려는 친구는 김이 샜다는 표정이다.

우린 서로 직접적인 대화나 눈길은 피하면서 점심을 먹곤 헤어졌다.

"정말 좋은 형이지?"

난 속으로 '가까이에 있는 형은 몰라보면서 형 타령은...'

 

집으로 돌아오는 내 심정은 착잡했다. 그 속에는 여러가지가 짬뽕이 되어있었다.

당연히 들어야 할 형 소릴 못 듣는게 갑자기 억울하단 생각이었다.

'아까 그 '형' 눈엔 내가 어떻게 보였을까?

한 살 어린 애들이랑 다니는게 우습게 보였을까?

그래도 그렇지.. 왜 난 당당하게 고교동창의 이름을 부르며 반갑게 손을 잡지 못했을까? 죄지은 것도 아닌데.. 왜?

아냐. 만일 내가 그 '형'과 말을 텄다면 내 친구는 너무 당황했을거다. 나 때문에 혼돈이 생겼을거다.

친구의 친구니깐 그 형도 친군가. 아니면 형의 친구이니 날 형이라고 해야하나.. 하고.

그래서 날 대하길 껄끄러워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말 안하길 잘했지...'

그러면서 내 기억엔 좀 원망을 했던거 같다.

'내가 왜 이런 애매한 입장이 됐냐. 이게 다 그 놈의 오락가락하는 입시 정책 탓이야. 그걸 바꾼 놈이 누구야?'

 

 

지금 난 양쪽에 엉거주춤하게 걸려있던 그 당시의 상황들을 고맙게 생각한다.

한 살 어린 애들과 공부한 경험은 친구를 사귐에 나이에 연연하지 않는 경험과 사고를 중요시하게 해주었다.

두 영역 사이를 넘나들면서 양쪽을 다 이해하게 되고 그 속에서 두 배의 경험을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더 나아가서 가끔은 양쪽을 갈라놓고 있는 벽을 허무는 역할을 하게된다.

지금도 가끔 난 선배에게 쉽게 반말을 하는가 하면 후배에게 걸림없이 존대말이 나가기도 한다.

그런 헷갈림이 관계와 상황을 풀어가는 데 윤활유가 되는 셈이다.

 

물론 항상 좋은 건만은 아니다.

어느 한쪽에 확실히 끼지 못하는 건 소외감을 갖게된다.

그러나 이제 와서 난 그 소외의 경험이 내게 귀중한 것을 가져다 주었음을 안다.

중심에 끼지 못하고 주변에 머물며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을 갖게되었다는 점.. ^^

 

......

 

난 안정된 중심보단 불안정한 주변을 맴돌고자 한다.

지난 주 금요일, 팀원들에게 말했다.

마치 어린시절 함께 놀면서 아무데서도 짝을 찾지못한 애들한테 새끼손가락을 쳐들며 외치듯,

"낼 주말을 앞두고 특별한 스케쥴이 없는 사람들.. 여기 붙어라."

난 이 좋은 봄날 그렇게 많은 놈들이 짝이 없는 줄 몰랐다.

그저 서너명 정도가 주말 데이트약속이 없으려니, 하곤 금요일 심야영화나 함께 가야겠다.. 생각했는데..

왠걸 너도 나도 내 새끼손가락에 달라붙는거다. 거기다 생각지도 못한 녀석들까지 빈대붙는다.

 

 

종로 3가의 극장에서 '연애의 온도'를 봤다. 끝나고 나니 밤 12시가 넘었다.

그 엉거주춤 패거리들은 뭐가 좋은지 광화문 이순신동상 앞까지 한패가 되어 걸었다.

역시 박쥐들은 밤이 좋은가보다.

"장군님! 나라를 구하듯 이 놈들도 구해 주시면 안될까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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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프랭크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