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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2. 30. 15:55

테신의 겨울 음악에 부쳐/클래식 칼럼2014. 12. 30. 15:55

 

 

 

찬 바람에 쓸쓸함이 더해가는 겨울의 한 복판에서, 음악 중에서 겨울 이미지가 담겨 있는 곡들을 찾아 기나긴 겨울 여행의 발걸음을 내딛는다. 겨울!이란 계절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곡이 있다면 아마도 슈베르트의 연가곡집 《겨울 나그네 - Winterreise》을 들어야 할게다. 이 곡이 겨울 이미지를 상징하게 된 까닭은 곡의 제목에 부쳐진 '겨울'이란 단어 때문이기도 하지만 고독한 겨울 나그네의 이미지를 너무도 선명하게 담아낸 뮐러의 시 때문이다. 이 곡에 대한 설명은 다음에 하기로.. 그럼 겨울 이미지를 그려낸 곡이 <겨울 나그네> 말고는 또 없는 것일까?

 

 

우선 바로크 음악의 대명사 비발디(1678~1741)의 바이올린 콘첼토 <4계 - Le Quattro Stagioni>중 '겨울 - 협주곡 제4번, F minor'를 빼놓을 수 없다. 우리에게 너무도 잘 알려진 이 곡은 바로크 음악의 아름다운 선율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곡이다. 이 곡의 소네트를 살펴보면 추운 겨울의 정경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하얀 눈 속에 추위와 살을 에이는 듯한 바람을 안고 총총히 집으로 달려가는 사람들, 혹한에 이가 덜덜 떨린다. 화롯가에 앉아 심심한 나날을 보내는데 창밖엔 찬 비가 내려 만물을 적신다. 얼어붙은 강 위를 조심스레 걷는다. 뚜벅뚜벅 걷노라면 얼음이 예리한 소리를 내며 갈라진다. 이제 눈 위를 걷는다. 철문 밖에선 북풍과 남풍이 싸우는 바람소리가 들려 온다."

 

 

 

비발디, 바이올린 협주곡 4번 F장조, Op.8 No.4 "겨울"

Academy of St. Martin in the Fields, Julia Fischer / 바이올린

 

2악장 Largo

 

 

교향곡의 아버지로 불리는'J. 하이든'... 그가 작곡한 오라토리오《4계 - The Seasons, Jahreszeiten》는 춘. 하. 추. 동 4계절을 담고 있는 작품으로 「제4부」는 '겨울 - Der Winter"라는 부제를 갖고 있다. 영국의 시인 톰슨의 목가적인 연시를 바탕으로 하여 만든 이 곡은 아름다운 전원의 모습을 오라토리오 형식에 담아내고 있는데, 하이든은 이미 오라토리오《천지창조 Die Schöpfung》에서 신을 찬미하는 종교화를 거대한 스케일로 구현해 낸 바 있다.『4계』의 경우, 늙은 소작인과 그의 딸, 그리고 젊은 농부를 주연?으로 하여 4계절의 정경을 담아낸 소박한 규모의 작품으로 겨울의 가사엔 "한겨울 모든 것이 얼어붙은 들의 정경과 심한 눈보라에 길을 잃은 나그네, 처녀는 그들을 따뜻한 집으로 안내한 뒤 실잣는 노래를 부른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하이든, 4계 중 "겨울" 

Hanne (Soprano) - Sibylla Rubens
Lukas (Tenor) - Andreas Karasiak
Simon (Bass) - Stephan MacLeod



러시아를 대표하는 작곡가 차이코프스키(1840~1893) 역시 {4계 - The Seasons}라는 제목의 피아노 소품집을 작곡했다. 이 작품은 차이코프스키가 페테르부르크의 조그만 잡지사에 매달 한편씩 기고했던 곡을 한데 모아 놓은 것이다. <4계>는 모두 12편의 피아노 곡으로서 제각기 다른 계절의 정취를 그려내고 있어 흥미를 자아낸다. "1월-난로가, 2월-카니발, 3월-종달새의 노래, 4월-송설초, 5월-5월의 밤, 6월-뱃노래, 7월-보리타작의 노래, 8월-수확, 9월-사냥의 노래, 10월-가을의 노래, 11월-트로이카, 12월-크리스마스..." 4계절의 정경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가? 특히 <11월-트로이카>는 12곡 중에서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 곡으로 트로이카는 '말이나 꽃사슴이 끄는 러시아 썰매'를 말한다. 우수에 젖은 1월로 시작하여 씽씽(?)카로 달리는 11월에 이어 경쾌한 캐롤이 울려 퍼지는 12월의 모습이 피아노 선율에 모두 실려 있다.

 

 

 

차이콥스키 4계(The Seasons), op.37bis

Vladimir Ashkenazy / 피아노

No.11. November, Troika

 

 

No.12. December - Christmas

 

 

No.1. January - At the Fireside

 

 

차이코프스키의 작품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러시안의 정서는 '비장함 속에 스며있는 격정적이며 멜랑꼬릭한 감성'이다. 그중에서도 '어느 위대한 예술가를 위하여...'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피아노 트리오 A minor>는 그의 은사인 니콜라이 루빈스타인(모스크바 음악원 설립자)을 추모하며 만든 곡이다. 그의 대표작 <교향곡 제6번 비창>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이 작품 또한 그의 내면에 감춰진 인간적인 고뇌와 비애감이 러시아의 황량한 겨울 벌판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그의 또 하나의 걸작 <1812년 서곡>은 혹독한 추위 속에서 무적의 나폴레옹 군대를 용감히 물리친 러시아의 빛나는 승리의 역사가 담겨 있어 겨울과 연관 짓지 않을 수 없는 곡이다.

 

 

 

차이콥스키 피아노 트리오 A단조, Op.50
Martha Argerich / 피아노, Gidon Kremer / 바이올린, Mischa Maisky / 첼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트리오 2번 D단조, Op.9

 

 

 

같은 러시아 출신의 작곡가이자 라흐마니노프와 스크랴빈의 스승이었던 아렌스키(1861-1906)... 그가 작곡한 <피아노 트리오 D minor> 역시 성 페테르스부르크 음악학교의 첼로 연주자이자 지휘자였던 칼 비도프를 추모하는 곡이다. 라흐마니노프(1873~1943) 역시 <피아노 트리오 2번 D minor>를 남겼는데 이 또한 그의 정신적 스승이었던 차이코프스키를 추모하는 곡이다. 두 곡 모두 러시안 특유의 애조띈 선율 속에 겨울의 애상을 격정적으로 그려내고 있어 겨울 이미지와 잘 어울리는 곡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제2번 E minor> 3악장 아다지오를 들으면 흰 눈 덮힌 시베리아 벌판의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비극적인 사랑의 대 서사시를 그려낸 영화 '닥터 지바고'의 스펙터클한 영상이 떠오른다.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 Op.27 3악장 Adagio

London Symphony Orchestra, Gennadi Rozhdestvensky / 지휘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 D단조, Op.42

Gothenburg Symphony Orchestra, Gustavo Dudamel / 지휘

 

 

 

이외에도 차이코프스키의 발레극 《호두까기 인형》이나 발트토이펠의 <스케이터 왈츠>를 비롯해 북구의 서늘함을 느끼게 하는 시벨리우스의 < 교향곡 제2번 D minor>에서도 겨울 이미지를 발견할 수 있다. 쇼스타코비치의 낭만적 소품곡 <로망스>의 따뜻한 첼로 음색에 빠져 보는 것도 겨울이란 계절이 가져다 주는 낭만이 아닐런지...

 

 

 

 

 

 

 

1946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대문호 헤르만 헤세... 그는 1919년 그의 나이 42살 때, 스위스의 작은 마을 '테신'이라는 곳에 정착한다. 이 곳에서 헤세는 틈틈히 그림을 그리며 '싯다르타, 황야의 늑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유리알 유희'등의 명작들을 쓰게 된다. 이 시절, 헤세는 무려 삼천여점에 이르는 수채화를 남겨 놓았는데... 그가 그림에 담아놓은 자연에 대한 사랑은 문학에 대한 애정만큼이나 진한 감동을 준다. 헤세가 쓴 작품에는 '테신의 겨울'이란 제목의 詩가 하나 있다.

 

 

숲의 나무를 쳐내 빈터를 만드니

세상이 너무나도 다르게 보인다

이 쪽은 넓고 저 쪽은 너무나 촘촘해져

모든 것이 새롭고 은은하게 빛난다

 

저 산은 보라빛 베일을 뒤집어 쓰고

유리알처럼 반짝인다, 먼 산의 눈

삼라만상의 윤곽은 뚜렷해지고

호수는 더 가깝게, 그리고 더 크게 보인다

 

남쪽 산 허리 절벽 위엔

따뜻한 태양과 바람이 불고 있다

대기에 가득 찬 향기 속에

어느새 봄의 입김이 가득하다

 

◆ Hermann Hesse ◈

 

 

 

 

자연을 찬미한 헤세의 시와 그림에서 따뜻한 인간의 정을 발견하는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몹시도 추운 요즘 날씨 속에서 그가 그려낸 겨울의 정경이 쓸쓸해 보이지 않는 까닭은 절망을 딛고 일어서려는 삶의 의지와 좌절의 늪에서 피어난 한가닥 희망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이제 하루만 지나면 한해를 마감하고 2015년으로 접어든다. 얼마 전 어느 책에서 "시간을 아껴 써야 한다!"는 글을 보았다. "시간을 뺏기기보다는 차라리 돈을 뺏기는게 낫다"는 말을 곰곰이 되씹으며 지난 한해동안의 시간을 대충 계산해 보았다. - 1년x365일x24시간=8,760시간. 그 중에서 잠자는 시간, 밥 먹는 시간을 빼고 나면 대략 6천시간이 남는다. 거기에다 사무실 출퇴근 및 일하는 시간을 또 빼면 남는 시간은 2천 5백여 시간. 2,500시간=115일 정도?... - 계산상의 수치는 이렇지만 일년 365일 중에서 오직 나만을 위한 시간은 1/3 정도 된다. 물론 일년 365일 모두 나와 관계된 시간이긴 하지만 "촌음을 아껴 써야 한다!"는 옛 성인들의 말씀은 거짓이 아닌 듯 싶다.

 

그러나 애초부터 나(또는 그대)만을 위한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에겐 사랑하는, 아니 사랑해야 할 대상이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대상이 내가 믿는 신이든, 부모님이든, 자신의 일이든, 또는 이성이든... 그것은 관계치 말자. 사랑하는 대상을 위한 시간은 돈으로는 결코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진정으로 사랑할 만한 가치를 지닌 대상이 존재한다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바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음악을 사랑하는 이유 또한 다를 바 없다. 내가 원하는 절대 가치를 음악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창백하다 못해 투명한 빛깔을 지닌 겨울... 고독으로 잠 못이루는 그대에게 무명 시인이 쓴 사랑의 시 한 구절과 아름다운 클래식 음악의 한 소절만이라도 들려주고 싶다. 그래서 긴 긴 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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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프랭크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