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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것은 다 변하고 있다. 변하되 빨리 변하며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다.

특히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너무 많은 변화와, 터가 흔들리는 변화를 경험하며 살고있다.

그런데 이 변화를 자세히 관찰하면 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썩음의 노예가 되어서 계속 죽어가는 죽음에로의 변화이다.

사실 사람은 날 때부터 죽기 시작한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어차피 죽는 날이 정해져 있으니

결국 죽음을 향해 계속 가고 있는거다.

세상에는 이렇게 파괴적이요 부정적으로 볼 수 밖에 없는 그런 변화가 있어 계속 썩어가고 소멸되는 것이 있는가 하면,

또 한편으로는 생명에로의 변화가 있다.

거름더미 속에서 장미꽃이 피듯 썩이지는 것 속에서 아름다운 것이 자라는 생명의 변화가 있다.

 

그런데 변화에 대해 두 가지의 다른 이해가 있다.

첫째, 진화론적인 변화다. 만물을 볼 때에 모든 것을 하나의 진화로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속에는 생존 경쟁, 적자 생존, 약육강식 등의 싸움이 있다.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잡아먹는 것이다. 한마디로 변증법적 변화이다.

둘째는, 인격적인 변화이다. 때로는 역설적인 것 같으나 순리적이다.

가령, 혁명이란 단번에 이루어지는 물리적인 급한 변화이나, 교육이나 민주화는 느리고 때로는 무력해 보이기까지 한다.

언제 설득시키고 변화되나 하는 걱정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약한 것 같으나 강하고, 없는 것 같으나 엄연히 존재하는 것으로 서서히 인격적인 변화를 이루게된다.

그래서 가르치고 배우고 깨달아 인간답게 살려는 노력이 있게되는 것이다.

이 노력을 통해 우리는 이만한 문화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돌은 몇 억만 년을 두어도 여전히 돌이지만, 생명이 있는 것들은 성장하고 자율적으로 번창해 가니 얼마나 오묘한가.

새해에는 서로 싸우는 일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분쟁의 원인이 있으면 거기에는 분쟁이 있을 수 밖에 없다. 분쟁의 원인은 자기 우월감이다.

부부 싸움을 할 때에도 상대방이 더 훌륭하다고 생각한다면 싸울 수 있겠는가?

사실 나 스스로 겸손하기란 매우 어렵다. 자기 교양과 수양으로 겸손해지는 사람을 보았는가?

그저 겸손해 질 수 밖에 없는 지경이 되어야만 겸손해진다. 이건 말로는 안된다.

어찌보면 겸손은 신의 선물인거 같다.

 

겸손한 사람은 전체를 본다. 분쟁은 나 하나만을 위해서 전체가 죽어도 괜찮다는 생각에서 시작되는거 같다.

사실 전체를 살려야 나도 사는데.. 그 이치를 우린 자주 잊고산다.

아무리 새해가 와도 내가 변하지 않으면 여전히 묵은 해지 새해가 될 수 없다.

새해에는 내가 좀 더 겸손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오래 전, 돌아가신 정채봉 시인의 시를 옮겨본다.

 

첫길 들기 / 정채봉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먼저 창을 열고

푸른 하늘빛으로

눈을 씻는다.

 

새 신발을 사면

교회나 사찰 가는 길에

발자국을 찍는다.

 

새 호출기나 전화의 녹음은

웃음소리로 시작한다.

 

새 볼펜의 첫 낙서는

'사랑하는'이라는 글 다음에

자기 이름을 써본다.

 

새 안경을 처음 쓰고는

꽃과 오랫동안

눈맞춤을 한다.

 

 

 

초심初心 - 처음의 마음가짐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챙기고 단속하련다.

노먼 필 박사가 이런 말을 했다. 

"‘노(no)를 바꿔쓰면 전진을 의미하는 온(on)이 된다.

모든 문제에는 반드시 문제를 푸는 열쇠가 있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찾아내어라."

 

 

 

 

클래식 음악에 커다란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큰 덩치의 오케스트라가 이끌고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변화되어가고 있지만, 세계를 이끌고 있는 1등 오케스트라는 큰 지각변동이 없다. 만년 1등이 꾸준히 1등을 하고있다.

그만큼 오케스트라 문화는 오래된 전통과 조직력을 갖고있기 때문에 그렇다.

이 땅의 최고의 오케스트라를 들자면 빈 필과 베를린 필, 이 두 오케스트라이다.

세계음악의 수도라 할 수 있는 비엔나의 대표 오케스트라인 빈 필하모니는 개성도 강하고 악기도 독특하고

변화를 거부하는 그나름의 전통을 고집하고 있다.

 

 

 

 

빈 필하모니 오케스트라는 우리가 처음 클래식을 입문할 때 제일 먼저 접하게되는 오케스트라일 경우가 많다.

이 오케스트라는 2천년도 초반까지만 해도 매년 우리나라를 방문했었다.

그래서일까. '흔하면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말과 같이 약간 우리에게 식상한 면도 없진 않다.

어느 순간에서 부터인가 내한공연을 하지않고 있다.

그래서일까. 언제부턴가 빈 필은 중국에서 왕성한 공연을 하고있다. 한마디로 중국은 클래식계에서도 빅 마켓이 되고있는 것이다.

작년에도 빈 필은 중국 베이징에서 베토벤 교향곡 전곡을 연주한 바 있다.

중국의 파워를 생각할 때 우리나라 클래식음악계도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와의 끈을 놓지 않았으면 좋겠다.

 

 

 

Josef Strauss, Die Soubrette, Polka schnell op.109
Franz Welser-Moest / conduct, Vienna Philharmonic Orche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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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프랭크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