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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3. 9. 07:37

내가 사는 아파트 음악에 부쳐/클래식 칼럼2013. 3. 9. 07:37

 

 

 

 

 

 

 

나는 아파트에 산다.
언젠가는 나뭇잎에 스치는 바람 소리만 들리는 전원에서 살아야지... 하고
다짐하지만 아직은 못 이룬 꿈일 뿐이다.
창문 건너편엔 또 하나의 아파트가 있고, 그 커다란 상자는 여러개의 칸들로
이루어져 있다.
칸칸마다 다른 얼굴의 사람들이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있다.
정말 벽 하나 사이에 두고 살고있는 이웃들이 너무도 다른 삶을 살아간다.



어제 너무도 맑은 공휴일 오후,
근처 스포츠센터 트랙에서 숨이 차 오르도록 조깅을 하는데 등에 땀이 흘러
시원한 메밀국수 한그릇을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항상 지나는 편의점 앞 이지만 오늘은 분명히 달랐다.

분명히 잊지않은 얼굴이 그 자리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 아, 정말 오랜만이다. 너 아직도 그 일 그대로 하지?
아이들은?... "

5분 정도의 대화는 서로의 얼굴을 너무나 환하게 웃게 해 주었고,
그가 입고있던 넥타이와 와이셔츠는 우리들의 장난기 어린 대화에 장애가 되지 않았다.
음악시간에 예쁜 여선생님의 피아노소리에 맞추어 '싼타루치아'를 부르고,
양은 도시락을 석탄 난로위에 올려가며 점심시간만을 기다리던 겨울이 즐거웠던 시절,
그때 그 시절의 우리들의 꿈은 정말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 꿈은 영원한 친구 관계의 상징이기도 했다.
" 우리 졸업하고 다른 학교에 가도 게속 연락하는거야,
우리 결혼해도 같은 동네에 살자,
우리 십년후에 이 자리 이 시간에 만나는 거야,
그 때는 멋진 모습이 되어 있겠지? "

 

손가락 걸고 영원한 우정을 다짐하며 약속을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때부터 각자의 길을 걷게 된다.
세상에 부딪히고 좌절하고 다시 일어서고 성공도 하면서 점차 각자의 길에
익숙해져 그 옛날 함께 걸었던 친구들의 길은 희미하게 잊혀져 간다.

5분 정도의 짧은 반가움은 곧 각자의 길로 돌아가는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서,
명함 한장씩 주고 받는 것으로 끝나고 만다.
하지만, 이젠 우리는 그 시절의 약속을 지키지 못함을 서로 탓하지 않으며
친구의 건강과 가정의 행복을 기원하며 짧은 휴일의 우연한 만남을 마쳤다.

비록 우리가 삐걱이는 학교 교실 나무바닥에 무릎꿇고 왁스칠하며 다짐했던 약속들을
지금은 지키지 못하고 있더라도 그 시절의 약속을 기억하고 있는 것 만으로도
그 약속은 끝난 것이 아니라 여긴다.

 

어느새 우리는 각자의 길을 걸어서 각자의 공간에서 각자의 일을 하고 있다.
과학자가 되겠다던 친구가 증권회사 직원이 되어있고,
그림을 그리던 친구는 시인이 되어 있기도 한다.

영문학자가 되겠다던 친구는 노동법을 연구하는 연구원이 되어 장관후보자가 되기도한다.

트럼피스트가 되고싶었던 난 엉뚱하게도 남을 가르치는 사람이 되었다.

우리가 함께 같은 모습으로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 서 있지는 않지만,
우리들 각각의 마음 속에는 어릴적의 약속이 소중한 자국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어쩌면 잊었던 친구가 아파트 바로 옆집에서 또 하나의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주말엔 책상 서랍 깊숙히에서 낡은 다이러리를 꺼내어 빛바랜 친구들의
전화번호를 찾아봐야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그리움의 덧문을 닫을 시간 / 류시화

 

 

 

세상을 잊기 위해 나는
산으로 가는데
물은 산 아래
세상으로 내려간다
버릴 것이 있다는 듯
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있다는 듯
나만 홀로 산으로 가는데

채울 것이 있다는 듯
채워야 할 빈 자리가 있다는 듯
물은 자꾸만
산 아래 세상으로 흘러간다

지금은 그리움의 덧문을 닫을 시간
눈을 감고
내 안에 앉아
빈 자리에 그 반짝이는 물 출렁이는 걸
바라봐야 할 시간

 

 

Andante spianato and Grande Polonaise Brillante for piano & orchestra, Op. 22

 쇼팽의 "안단테 스피아나토(Spianato)"는 이탈리아어로 "매끄러운, 안정된"이라는 의미가 붙어 있듯이, '조용하고, 맑게 빛나고, 쾌청한 날의 호수를 연상 시킨다. 작은배가 물의 투명하고 잔잔한 표면을 경쾌하게 미끌어져 가는 장면을 난 연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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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프랭크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