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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과 가는 길은 정겨워서 좋다.

좋은 사람과 어깨를 맞대고 걷다보면 그 먼 길도 눈 앞으로 다가오고, 나는 그 사람의 옛이야기를 들으며 풍성한 미소의 잔을 채우게 된다. 천천히 걷는 내 발걸음은 목적지를 소망하지 않지만 어느 덧 다가선 어스름한 불빛이 원망스럽지 않다.

 

연인과 가는 길은 어두워서 좋다.

어둠은 얼굴을 가리는 대신 목소리를 보여준다. 소음에 묻혀버린 사람 목소리의 아름다움을 일깨워준다. 그 사람의 가슴이 담긴 재잘거림이 귓전을 맴돌아 내 가슴으로 내려앉는 신비. 떨림이란 이런 것일거다. 언제나 듣던 목소리가 유일한 소리로만 들리면 가슴은 개울소리 시기하듯 크게 쿵쾅거린다.

 

연인과 가는 길은 잣나무가 있어 좋다.

잣나무는 어둠을 품어 밤을 깊게 한다. 돌부리에 넘어질까 조심하고, 행여 그 사람 넘어질까 내가 먼저 한 걸음 앞장 서보고, 바람에 시린 손 내밀어 어색한 신사도를 베풀어도 하나도 어색하지 않다. 밤을 지나가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굽혀 길을 보노라면 어느새 우리는 오래 된 연인처럼 밀착되어 있다. 잣나무가 이따금 달빛을 선물하면 친밀한 두 그림자는 길이 되고, 맞잡은 손은 쑥스러워 내 주머니로 슬그머니 숨어버린다.

 

연인과 가는 길은 별이 있어 좋다.

잣나무가 품은 밤은 유난히 반짝인다. 하늘보는 낭만을 잊을때면, 별을 보기 위해 하늘을 본다. 그리고 그냥 걷다 돌부리를 보지 못해 휘청거리면 정겨운 손이 화들짝 놀라며 나를 부축한다. 별을 보는 사람은 넘어지지 않는다. 별을 보는 나를 조심히 바라보며 걷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저 별을 보라고 말하고는 별똥별처럼 함께 휘청거린다.

 

연인과 가는 길은 계절이 있어 좋다.

같은 모습, 같은 패션, 같은 화장, 같은 꿈으로 가득 찬 사람을 보는 것이 지쳤을 때 시골길을 걷는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선명히 뿜어내는 각양 식물들의 저마다의 옷차림은 세심한 눈에만 허락된 축복이다. 계절은 천천히 걷는 이에게만 다가선다. 좌우를 돌아보는 느림이 막 돋아나기 시작한 잎을 보고 봄을 노래하게 한다. 멈춤의 여유가 길가 돌틈 사이의 파란 잎새를 뜯으며 장난치는 봄을 즐기게 한다.

 

연인과 걷는 길은 버스가 들어가지 못해서 좋다.

같은 마음을 품은 사람과 걷는다는건 빠름이다. '벌써 목적지야'라는 아쉬움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같은 마음을 품은 사람과 걷는다는 것은 견딤이다. 아직도 차가운 봄바람을 시원하다고 말하는 낭만을 주기 때문이다. 난 지금 봄으로 가는 길에 그와 함께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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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프랭크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