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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29. 21:30

사람을 쬐다 음악에 부쳐/클래식 칼럼2013. 1. 29. 21:30

 

 

 

사람이란 그렇다

 

사람은 사람을 쬐어야지만 산다

독거가 어려운 것은 바로 이 때문, 사람이 사람을 쬘 수 없기 때문

그래서 오랫동안 사람을 쬐지 않으면 그 사람의 손등에 검버섯이 핀다 얼굴

에 저승꽃이 핀다

 

인기척 없는 독거

노인의 집

군데군데 습기가 차고 곰팡이가 피었다

시멘트 마당 갈라진 틈새에 핀 이끼를 노인은 지팡이 끝으로 아무렇게나 긁

어보다가 만다

 

냄새가 난다. 삭아

허물어진 대문간에

다 늙은 할머니 한 사람 지팡이 내려놓고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 바라보고 있

다 깊고 먼 눈빛으로 사람을 쬐고 있다

 

- 시인 유홍준의 세번 째 시집 "저녁의 슬하" 중에서

 

 

 

 

 

사람을 쬔다...

 

난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안다.

난 아주 추운 1월 달에 입대를 했다.

훈련소의 겨울은 난생 처음 맞아보는 시베리아.. 였다.

아마도 배가 고파서 더 추웠을 것이다.

 

훈련 중 쉬는 시간엔 따뜻한 양지에 가서 웅크리고 앉아 짧은 가수면을 즐기곤했다.

매서운 겨울바람 사이로 뚫고 오는 햇살이 무어 따뜻하겠는가.

그러나 겨울햇살이 그렇게 포근한 줄 미처 몰랐다.

마치 어머니 치마폭에 감싸인 듯 거의 모든 훈련병이 막사 밑 양지 아래서 병든 닭처럼 끄덕거리고 있었으니...

 

휴일날은 어김없이 교회엘 갔다.

솔직히 예수님만나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사람이 그리워서..

민간복을 입은 사람과는 철저히 격리되어 두달을 지내다보니

너무너무 사람이 보고싶었다.

훈련소 내에 있는 교회는 주일이면 어김없이 까까머리 훈련병들로

파리떼처럼 꼬여있었다.

예배 중 난 설교하는 목사를 보기보다는 성가대석만 바라보았다.

거기엔 천사들이 앉아있었다.

젊고 아리따운 천사들이 아니라 빨간 루즈에 파마머리 아줌마천사들..

굵은 돋보기 안경테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할머니천사들...

적어도 춥고 배고픈 내 눈엔 당시 그들은 너무나 아름다운 천상의 여인들이었다.

 

예배가 끝났다.

빵과 우유, 그리고 과자, 사탕 등...간식을 나누어주는 시간..

"고생많지? 어여 먹어..."

내 빡빡머리를 쓰다듬으며 내 입에 두툼하게 빵을 넣어주는 뚱뚱한 어느 아줌마가 지금도 아련하다.

 

사람을 쬐었다.

엄마 생각이 났다. 엄하디 엄한 아버지 생각도 났다.

나도 모르게 울컥하는 마음에 그 뚱뚱한 품으로 기어들었다.

"아이구... 이 눔 자식..."

당황해 하면서도 반은 웃는 모습... 아마도 제 새끼라고 여겼으리라.

 

난 훈련소 두달 동안 한번도 빠짐없이 교횔 출석했다.

사람을 쬐기위해서...

 

이젠...

누군가의 손등에 검버섯이 오르면 한번 더 바라볼 것만 같다.

눈치채지 못하게 슬쩍 어깨를 두르기도 하고

손을 잡고 조물조물 만져줘야 할 것만 같다.

주머니에 사탕 하나라도 가지고 다녀야 할 것 같다,

 

대문 간에 의자 놓아두고

지나는 사람들 끄트머리까지 시선으로 동행하던 백발 할머니.

곁불이 그리운거다.

 

사람을 쬐다.

인생이 그런거다.

 

 

 

 

올 겨울은 유독 엄동설한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 추위에 훈련은 고통이다.

지금은 넉넉한 방한피와 배식에 내 때와는 비교도 되지않는 훈련소생활이겠지만,

사람을 쬐고싶은 마음엔 그때나 지금이나 "같다"고

고통총량 불변의 법칙은 외치고있다.

 

가족이 보고싶어 마음의 검버섯이 하얗게 피었을 이 나라의 간성인 후배들에게

이 음악을 헌정한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2번 2악장이다.

모든 협주곡의 2악장은 너무 아름답다.

플륫으로 시작해서 클라리넷으로 넘어가는 부분은 숨이 막힌다.

때론 오줌이 찔끔 나올만큼 아련하고 포근한 사랑의 테마다.

이 음악이 그들에게 양지가 되길 바라며...

 

 

Evgeny Kiss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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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프랭크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