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델라이데 음악에 부쳐/클래식 칼럼2012. 10. 13. 09:36
여기 몇 년전 출판된 저의 작품을 보내 드립니다. 송구스럽게도 이 곡은 선생님께 알리지도 않고 발표했습니다. 변명같지만... 사과드리는 마음으로 선생님께 이 곡을 바칩니다. 선생님께 미리 알려 드리지 못한 까닭은 선생님 주소를 모르기도 했거니와 부끄러웠기 때문입니다. 허락을 하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감히 이 곡을 바치기가 두려웠던 것이지요.
이제나마 아델라이데를 보내 드립니다. 한창 성장하는 예술가에게 한 해 한 해 다가오는 변화가 어떤 것인지 아마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예술가는 발전을 거듭할수록 자신의 지난 작품에 대해 좀처럼 만족할 수가 없습니다. 선생님의 고결한 작품에 붙인 이 곡을 못마땅하게 보시지만 않는다면 저로서는 소원이 성취된 것과 다름없습니다.
선생님께서 감흥이 일어나 그에 버금가는 시를 지어 주신다면 제 부탁을 들어주신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새로 지은 시를 제게 보내 주신다면 정성을 다해 선생님의 아름다운 시상에 가까이 다가서 보겠습니다.
이 곡을 바치게 된 것을 제가 아델라이데를 작곡한 기쁨의 표시로 여겨 주셨으면 합니다. 또 한편으로는 그런 영혼의 즐거움을 얻은데 대한 감사와 존경의 표시로 받아 주십시오. 선생님의 시는 제게 항상 즐거움을 주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가끔 아델라이데를 들을 때 저를 꼭 기억해 주십시오. / 1795년 8월 4일
예전 학창 때 일이다. 겨울의 문턱, 11월 어느날 학교에서 돌아오니 고등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있던 여동생이 한참 노래연습 중이다. 기말고사를 앞두고 학교에서 실기시험을 본다며.. 처음 들어보는 성악곡이 너무 아름다워 거실에 아무렇게나 가방을 팽개친 채 피아노 옆에 서서 연습 중인 동생의 노래를 들었다. 무언가 마음을 울리는 가락에 한참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데, 동생이 빽 소리를 지른다. 연습하는데 방해한다고.. 머쓱한 마음에 방으로 돌아와 문을 빼꼼히 열고 들었던 노래.. 아델라이데.
위 편지는 베토벤이 시인 프리드리히 폰 마티손 (Friedrich von Matthisson,1761-1831)에게 보낸 것. 슈트트가르트의 극장 지배인과 극장장을 지냈던 마티손은 노래 가사를 많이 쓴 인물로 알려져 있다. 마티손의 시에 부쳐진 베토벤의 예술가곡 <아델라이데 - Adelaide>는 25살 때 작곡한 것으로 사랑하는 여인을 향한 뜨거운 열정이 듬뿍 담겨있다.
Marie Adelaide, 1742 / Nattier, J.M
Adela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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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이 자랑하는 불세출의 테너 프리츠 분덜리히의 수려한 목소리에 실린 선율 라인이 참 아름답다. 그 특유의 달콤한 목소리로 일찌감치 큰 명성을 얻었으나 어이없는 실족사고로 1966년 36세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뜨고 말았다. 이 곡은 베토벤의 가곡 중에서 <그대를 사랑해 - Ich Liebe Dich>와 함께 널리 애창되는 곡이다. 그런데 한가지 주목할 사실은 이 곡이 예술가곡으로 쓰여진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베토벤은 이 곡의 초판 악보에 '피아노 반주와 독창을 위한 칸타타"라고 써놓았기 때문이다.
"Ich liebe dich"
Fritz Wunderlich (tenor), Hubert Giesen (piano)
Elisabeth Grümmer (soprano), Hans Altmann (piano)
▒ 음악의 천재는 사랑의 천재가 될 수 없다?
첫사랑을 꿈꾸듯... 동경과 설레임으로 가득한 아델라이데... 이 곡을 듣고 있노라면 베토벤이 그려낸 것처럼 아델라이데의 아름다운 모습이 떠오른다. 이 곡을 쓸 당시, 베토벤은 젊은이답게 호방한 건반 터치와 자유분방한 피아노 연주로 빈에서 명성을 얻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 시절 베토벤은 자신의 영웅?적인 사고방식을 다음과 같이 피력한 바 있다.
Beethoven 1987 / Andy Warhol
용기를 갖도록 하자.
내 육체가 닳아 없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나의 천재는 승리하지 않으면 안된다.
내 나이 스물다섯이면
인간으로 완성되어 있어야 할 때가 아닌가..
아무 할 일이 없을 정도로
이미 모든 것을 성취했어야 할 나이인 것이다.
담대함과 정열은 모든 젊은이들의 상징이 아닐까? 그러나 음악의 천재가 사랑의 천재는 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사랑하는 여인 앞에서 아이처럼 서툴기만 했던 베토벤. 어쩌면 그는 실연에 대한 아픔을 작곡으로 달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베토벤의 심정을 알기라도 하듯... 마티손은 첫사랑에 빠진 젊은이의 심정을 <아델라이데>에 멋지게 실어 놓았다. 베토벤의 사랑에 대한 환상과 동경은 30 여년 뒤, 세상을 떠날 때까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열애 / 신달자
손을 베었다
붉은 피가 오래 참았다는 듯
세상의 푸른 동맥 속으로 뚝뚝 흘러내렸다
잘되었다
며칠 그 상처와 놀겠다
일회용 밴드를 묶다 다시 풀고 상처를 혀로 쓰다듬고
딱지를 떼어 다시 덧나게 하고
군것질하듯 야금야금 상처를 화나게 하겠다
그래 그렇게 사랑하면 열흘은 거뜬히 지나가겠다
피 흘리는 사랑도 며칠은 잘나가겠다
내 몸에 그런 흉터 많아
상처 가지고 노는 일로 늙어 버려
고질병 류마티스 손가락 통증도 심해
오늘 밤 그 통증과 엎치락뒤치락 뒹굴겠다
연인 몫을 하겠다
입술 꼭꼭 물어뜯어
내 사랑의 입 툭 터지고 허물어져
누가 봐도 나 열애에 빠졌다고 말하겠다
작살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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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와 고통이 없는 뜨거운 사랑이 있을까. 사랑이란 상처를 주고받고, 그 상처를 치유하고 곱씹는 아쉬움과 고통 속에 그 본질에 가장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이다. 열애에 빠진 사람은 붉은 피를 뚝뚝 쏟는 베인 상처를 서둘러 수습하려 하지 않는다. 아니 잘되었다고 며칠 그 상처와 잘 놀겠다고 할거다. 소독하고 연고를 바르고 일회용 밴드를 바르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혀로 쓰다듬고 군것질하듯 야금야금 상처를 화나게 하며 상처가 준 고통과
그 향을 온전히 느끼며 그렇게 한 열흘은 거뜬히 같이 하겠다고 할거다. 어떤 사랑은 쉬 아물기도 하겠지만 어떤 사랑은 베이고 아물고 덧나기를 반복하며 끝내는 흉터로 남기도 하는데 어떤 이는 그런 사랑의 흔적을 몸 곳곳에 훈장처럼 가지고 살겠다는 것이다. 사랑의 상처, 그 통증과 함께 뒹굴며 열애에 빠진 사람, 아마도 베토벤이 그랬을 것 같다.
Adelaïde, Op.46
Fritz Wunderlich (tenor)/Hubert Giesen (pi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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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델라이데(Adelaïd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