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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9. 24. 09:46

잊혀진 것 음악에 부쳐/클래식 칼럼2011. 9. 24. 09:46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가난했던 어린시절,

점심시간이기도 전에 우연히 양철 도시락 뚜껑을 열고
차디차게 식긴 했어도 넓적하게 누워있는 계란프라이를 확인하고 기뻤던 그 때...  

'저 아이가 내게 말을 좀 붙여 주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며
주머니에 두 손 푹 집어넣고 콩당콩당 두근대는 가슴으로
그 아이의 주위를 뱅글뱅글 돌던 그 때...

햇살이 이불처럼 감싸주던 어느 낮. 제멋대로 자란 들꽃들로 꽃반지,
꽃 목걸이를 만들어 소꿉친구에게 걸어주던 그 때... 

 

끝없이 비가 내리던 여름방학의 어느 날
엄마가 부쳐준 빈대떡에서 뭔지 모를 서글픔을 느꼈을 때... 

엇그제 휴일 밤 서울 하늘에 떠있던 수퍼문처럼,

해질 무렵 하늘의 반은 덮었던 것 같았던, 어마어마한 수퍼무지개를 봤던 그 때... 

난생 처음으로 여자아이에게서, 그것도 생각지도 않았던 그 아이에게서
크리스마스 카드를 받고는 뭐가 불안했는지 펴보지도 못하고 가방 안에
1주일 간이나 모셔두었던 그 때...

다른 아이들은 모두 싫어했지만 '꽤 외로울 텐데...'라고 생각하며 두눈 딱 감고
여자부반장에게 편지를 써서 책상서랍에 넣어주고
다음날 내 책상서랍에 깊이 숨어있는 그 아이의 답장을 발견했던 그 때... 

그렇게 작은 것들이 커 보이고 큰 것들은 엄두도 내지 못했던 그 때... 
어른이 되어서 내가 잊고 사는 것...  참 많을거다. 

시간이 참 많이 지난 어느 날.. 
난 백지 위에다 '그 때.. 그 때...'하면서 또 다시 끄적이겠지? 

  

 

 

 

 

 

 

요놈 요놈 요놈아 / 천상병


집을 나서니
여섯 살 짜리 꼬마가 놀고 있다.

'요놈 요놈 요놈아'라고 했더니
대답이
'아무 것도 안 사주면서 뭘'

한다.

그래서 내가
'자 가자
사탕 사줄게' 라고 해서
가게로 가서
사탕을 한 봉지
사 줬더니 좋아한다.

내 미래의 주인을
나는 이렇게 좋아한다.

 

 

 

 

무더운 지난 주말의 여름밤,

잠은 오지 않고 아이들의 뛰어노는 소리에 나가보니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란 놀이를 하고 있었다.

 

장래의 부인 혹은 남편이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이성 친구의 손을 꼭 잡고
노란색 유치원 모자를 예쁘게 눌러쓴 모습으로 올망졸망 걸어가는 모습.

학교에서 배운 대로 횡단보도를 건널 때는 왼쪽 팔을 귀에 닿을 정도로 번쩍 들고
씩씩하게 걸어가는 모습.

엄마에게 뭔가를 사달라고 졸랐는데 오히려 혼이 날 때나,
친한 친구와 다투고 며칠동안 말을 하지 않을 때처럼,
가끔씩 마음처럼 되지 않는 일이 생겨서 심술을 가득 물고 있는 모습...

우리의 미래를 수놓을 다음 주인답게 참으로 순수하고 해맑다.

 

너희들도 시간이 지나면 '이 때'를 잊고 지내겠지?

 

 

 

 

 

 

베토벤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난 뭐라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애닯아진다.

독일인 특유의 감성을 받아서인지 어린시절 부터 타고난 기초적 음악성을 바탕으로

열혈 음악가인 아버지를 통해 피아노를 배우고,

제 2의 모짜르트가 될 것이란 주변사람들의 격려와 함께 16살 때 오스트리아 빈으로 유학을 떠난다.

 

어머니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유학을 중단하고 돌아왔지만,

어머니의 죽음은 아버지를 알콜중독자로 만들어 폐인이 되다시피한 아버지를 대신해

청소년기 부터 집안 생계를 떠맡다시피 했던 베토벤.

 

실의에 차있는 그를 격려했던 첫 사랑 엘레오노, 발트슈타인백작, 스승 하이든..

심해지는 난청에 음악가로서 어려움을 겪고있을 때 사랑으로 그를 돌본 구이차르디..

치명적인 귓병이 악화되자 자살까지 결심하는 베토벤..

 

그가 조용한 시골 하이리겐슈타트에서 요양을 하는 가운데

친구와 두 동생에게 보낸 편지 <하이리겐슈타트의 유서>에 보면

"난 운명의 멱살을 잡겠다"라면서 용기를 내어

교향곡 6번 <전원>, 3번 <영웅>, 5번 <운명>등을 작곡한다. 

 

가장 괴로운 시련의 시기에 불세출의 음악들이 탄생하던 그 때가

베토벤에게는 결코 잊혀질 수 없는 '그 때'였을 것이란 생각에...

그러나... 더불어 평범하고도 소담스런 어린시절의 잊혀진 '그 때'는 없었을 거란 생각에...

 

이 땅의 모든 음악도들, 결코 평범치 않은 그들의 일상에

훗날 그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풍성한 잊혀진 '그 때'가 과연 얼마나 있을까...란 생각에

난 이런 저런 생각에 잠 안오는 여름 밤, 마음만 더 애닯아진다.

 

 

    Beethoven Piano Concerto No.5 in Eb major, Op.73 'Emperor'

   (영웅 2,3악장)

 

Arthur Rubinstein, Pinao

Symphony Of The Air, Josef Krips (conductor)


 

II.  Adagio Un Poco Moto - Attacca    


 

III. Rondo. Allegro                             


 

Beethoven Piano Concerto No.5 in Eb major, Op.73 'Emperor' 전악장

 

 

 

Rudolf Serkin, Pinao

New York Philharmonic, Leonard Bernstein (condu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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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프랭크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