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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1. 22. 14:39

소설(小雪) 오후에... 음악에 부쳐/클래식 칼럼2014. 11. 22. 14:39

 

 

 

 

보름 전 겨울을 알리는 입동(立冬)이 지나갔다. 오늘은(11.22 / 토) 소설(小雪)인데...바야흐로 하얀 옷을 입은 겨울의 동장군이 우리 곁에 다가온 것인가... 지난 10월부터 오늘까지 가을의 정취를 제대로 느껴보지도 못한 채 대부분의 시간을 사무실에 파묻혀 지냈다. 어제 오후 늦게 잠시 밖을 나가 보니 어느새 가로수의 나뭇잎들은 초겨울의 찬바람을 이겨 내지 못하고 거의 떨어져 나가 아스팔트 위를 굴러 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나뭇가지 끄트머리에 매달려 있는 마지막 잎새들의 가느다란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이제 곧 땅으로 돌아갈 그들 모습을 바라보며 새삼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학창시절,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도서 목록엔 단편소설 <마지막 잎새 - The Last Leaf>이 차지하고 있었다. 이 소설의 작가인 오 헨리(O. Henry, 1862-1910)... '미국의 모파상'으로 불리울만큼 미국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오 헨리'는 한때 공금 횡령이란 죄를 짓고 감옥생활까지 했던 어두운 과거를 지닌 인물이기도 하다. 옥중 생활을 하면서 그는 <크리스마스 선물>, <20년 후>, <마녀들의 빵>등을 비롯한 10여 편의 단편을 썼는데 출감한 뒤 옥중에서 쓴 단편소설이 대중에게 널리 읽혀 지면서 인기작가 대열에 서게 된다. 미국에선 그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19년 '오 헨리 문학상 - O. Henry Award'를 제정하여 지금까지 전도유망한 작가들을 배출해 내고 있다.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마지막 잎새>의 줄거리는 대략 이러하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내용이겠지만...

 

 

 

 

위싱톤 광장 서쪽 '플레이스'라 불리우는 작은 마을... 그곳엔 가난한 화가들이 모여 살고 있다. 허름한 3층 집에 공동 화실에서 만들어 놓고 그림을 그리며 지내는 존시와 수우... 그 해 겨울, 폐렴(당시엔 불치병)이 그 거리에 찾아 들고, 그만 존시도 폐렴에 걸려 자리에 눕고 만다. 11월에 접어 들면서 존시는 병마에서 벗어나려는 삶의 의지를 모두 잃어버린 채, 창 밖 벽돌담에 붙어 있는 담쟁이 잎만 세고 있다. 그는 지극 정성으로 간호하는 친구 수우에게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면 자신도 죽게 될 거라고 말한다. 그들이 사는 집 아래층에는 노화가 버먼이 살고 있다. 그 노인은 평생동안 그림을 그려 왔지만 아직 단 한편의 걸작도 남기지 못한 평범한 화가. 수우는 버먼에게 존시의 병세를 이야기하는데... 얼마 후면 떨어질 마지막 잎새와 함께 그가 숨을 거두게 될까봐 수심에 싸여있다.

 

어느 날, 밤새도록 사나운 바람 속에 세찬 비가 내렸다. 마지막 남아있던 잎새가 떨어 졌을까? 다음 날 아침, 걱정스런 표정으로 수우가 창문의 커튼을 올려보니 놀랍게도 담쟁이 잎새 하나가 담에 붙어 있다. 그 잎새는 그 다음날이 지나고... 또 다음날이 지나도... 여전히 그 자리에 붙어 있었다. 마지막 잎새의 투혼에 감동한 존시의 병세는 차츰 호전되어 갔다. 어느 날, 아래층 노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 수우는 존시에게 놀라운 사실을 전해 준다. "당신을 살려 낸 마지막 남은 그 잎새는 버먼이 그린 그림이었어..." 비바람이 치던 날, 노인은 찬비를 맞아가며 마지막 잎새를 그려 나무에 매달아 놓았고, 그 때문에 결국 폐렴이 악화되어 죽고 만 것이다. 그 마지막 잎새야말로 노인이 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걸작'이 되었다.

 

 

 

  

간결한 문체 속에 의미심장한 메세지를 담아 놓은 이 소설의 진짜 매력은 어디에 있을까? 이 소설의 배경은 겨울로 접어드는 11월이며 존시가 접한 상황은 현실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 모든 희망을 상실해 버린 우리 자신의 모습과도 같다. 죽음을 상징하는 겨울은 모든 사물의 호흡을 정지시키고 오랜 시간동안 어두운 동면의 세계 속에 현실을 가두어 버린다. '오 헨리'가 노화가 버먼의 손을 빌어 그려낸 것은 정교한 나뭇잎이 아니라 그림 속에 새겨 놓은 한 가닥 삶의 희망이며 젊은 시절 좌절을 딛고 일어선 자신의 분신과도 같다. 암흑으로부터 광명의 세계로... 그것은 우리가 꿈꾸는 삶의 궁극적 목표가 아니던가...

 

붉게 물든 저녁노을 속으로 아련히 사라지는 굴뚝의 하얀 연기처럼 이제는 다시 돌아오지 못할 우리들의 젊은 날을 아름다운 영상에 담아낸 영화가 하나 있다. 80년대 최고 인기작가 최인호씨의 소설을 원작으로 곽지균 감독이 만들어 낸 <겨울 나그네>... 이제는 두 분 모두 우리 곁을 떠나 고인이 되셨지만, 이 영화는 그 해 최고의 흥행을 거두며 한국 영화사에 한 획을 긋는다. 슈베르트의 연가곡집 <겨울 나그네>와 같은 제목을 가진 멜로성 짙은 이 영화에서 의대생 민우(강석우)는 첼로를 전공하는 음대생 다혜(이미숙)와 연인으로 등장한다. 눈 내리는 호수, 앙상하게 늘어선 은사시나무, 하얀 눈에 뒤덮힌 겨울 별장... 그들이 첫사랑을 불태웠던 한강변의 모습은 마치 한 폭의 그림과 같았다.

 

 

 

 

슈베르트 가곡 겨울나그네 中 제 5곡 '보리수'

Schubert ,  Der Lindenbaum (Winterreise) Hermann Prey, Bariton

 

 

짧은 생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몇번에 걸쳐 삶의 전환점에 서게 된다. 그 때마다 우리는 극복의 의지를 불태우기도 전에 "이번이 내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라~" 하며 알 수 없는 불안감에 떨다가 이내 좌절의 늪에 빠져 버리곤 했다. 그러나 그 '마지막' 이라는 단어는 '또 다른 시작의 예고편이며 새로운 희망의 출발점' 이다. 책상 위에 놓여 있는 달력도 이제 한 장 밖에 안 남았지만 그 달력을 거두면 2014년의 새로운 날들이 다시 시작될거다. 그래서 마지막 잎새는 결코 슬프지 않다.

 

 

 

 자전거 바퀴 돌아가듯 시간이란...언제나 그렇듯이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새로운 계절의 길목에 서있는 요즈음의 풍경 또한 예년과 다를 바 없다. 늦가을과 초겨울 사이에 끼어있는 11월은 너무도 짧은 기억만을 남겨 놓은 채 우리 곁을 무심히 지나쳐 버리겠지. 저녁 무렵 포장마차에서 흘러 나오는 노란 불빛과 아른거리는 그림자가 정겹게 보이는 오늘... 누군가를 위해 '마지막 잎새' 를 그리고 싶다.

 

 

쇼팽 전주곡 中 17번

Chopin, Preludes Op. 28 : No. 17 in A flat major (Allegretto) Sviatoslav Richter, Piano

 

이 곡의 부제를 붙인다면 이렇게 말하고싶다. <그녀는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말했다>. 잔잔한 반주를 동반한 화음의 칸타빌레이다. 두텁게 겹쳐진 피아노의 맨 아랫음이 인생의 베이스엔 사랑이 있음을 나타내듯 선율을 노래하고 길게 테누토(지긋이 누르고 붙잡고 있기)되는 이 피아노음은 가슴을 저리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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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프랭크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