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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0. 24. 07:10

가을의 서정, 샤콘느 음악에 부쳐/클래식 칼럼2014. 10. 24. 07:10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 쇼윈도에 진열되어있는 옷들을 보면서 흘러가는 가을을 느낀다. 가끔 밤샘 작업을 하다가 책상 위에서 웅크리고 자는 것이 이제는 새벽 추위에 오싹하니 눈을 뜨게 만든다. 가을이다. 포장마차에서 우동 국물 위로 피어 오르는 김을 바라보며, '곧 겨울이 오겠지.. 이젠 밤을 지새우는 것이 힘들어지겠군' 하고 생각한다.

 

항상 이젠 진짜 가을이구나 하고 느낄 때면 어느 샌가 우리 곁엔 겨울이 찾아와 있곤 한다. 무언가, 또는 누군가 나에게 다가오는 것을 진심으로 깨닫게 될 때에는 이미 그 대상은 다시 어디론가 가버리고 있을 때가 많다.

그 사람이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구나…

그 사람이 나를 진심으로 아껴주었구나…

이런 깨달음은 안타깝게도,

그 사람이 나를 진정으로 사랑했었구

그 사람이 나를 진심으로 아껴주었던 것이구나…

이렇게 후회와 아쉬움으로 바뀌게 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왜 우리에게 다가오는 모든 현상을 그때 그때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밖에 보이는 저 은행나무도 이제 곧 노란 낙엽들을 거리에 쏟아낼 것이다. 작년 가을 우연히 접어든 정동. 그 유명한 돌담 길에 가득히 쌓인 은행잎들을 밟으며 지나던, 가을비 내리던 어느 오후가 생각난다. 쓸쓸한 가을 아침이 또 한 장의 추억이 되어 접혀진다. 오늘 당신 곁의 누군가가 당신을 바라보고 있을지 모른다. 아무 얘기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바라만 보면서 마음 속으로 무언가 얘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가 바라보는 그 누군가도 내가 바라본다는 것을 모르고 그저 이렇게 쓸쓸한 가을이 또 지나갈지도 모른다.

 

가을. 수 많은 감정들이 소리없이 부딪히고 낙엽처럼 거리에 떨어져 쌓인다. 가을을 느낄 땐, 이미 겨울이 오듯이, 그 사람의 감정을 깨달을 땐, 이미 어디론가 떠나갈 수도 있다.


 

 

 

 

한가로운 어느 가을날 오후... 사무실 오디오에는 리첼 포져가 연주하는 바흐의 샤콘느가 흘러 나오고 있다.

오래 전, 앙드레 오데의 소설 "무지칸트"를 바탕으로 한 프랑스 음악영화,【바이올린 플레이어】가 생각난다. 천재적인 바이올리스트인 아르몽은 자신이 몸담고 있었던 오케스트라 감독과의 음악적 견해 차이로 그곳을 떠난다. 청중의 환호를 받던 화려한 바이올리니스트인 그가 부와 명성을 뒤로 한 이유는, 소수의 선택된 특권층 청중 만을 위해 연주하는 음악세계의 이중성에 대한 환멸과 어둡고 소외된 곳에 머물고 있는 외로운 사람들을 달래주고 싶은 그의 음악적 세계관 때문이었다.

 

 

 

 

그는 거의 매일 하루 8시간을 지하철과 사람들로 북적대는 지하 공간에서 길거리 악사들과 함께 자신이 하고싶은 음악을 연주한다. 갑자기 정전된 지하철, 캄캄한 환승로에서 들려지는 아르몽의 연주는 우왕좌왕하던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하고 어둠 속에서 흘러나오는 고요한 바이올린 소리는 어떤 몽환적인 감동을 준다.

 

퇴근 후 가끔 지하철을 이용하는 나는 신도림역 환승 통로를 지날 때 마다 두리번 거리며 이런 생각을 해본다. 일상의 피곤에 지쳐있는 우리들에게 아르몽과 같은 거리악사는 없을까.. 가벼운 아쉬움을 가져본다. 음악이 줄 수 있는 아름다움이 소름끼치게 와 닿았던 이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주인공 아르망이 연주하는바흐의 샤콘느를 떠올려 본다. 바흐의 샤콘느는 아침안개로 가득한 가을 숲속의 이미지로 다가오기도 한다.

바흐의 무반주 파르티타는 바이올린 솔로의 처연한 울림때문인지 박제된 기억의 아련함 속에 가을의 이미지가 진하게 묻어 나온다.

 

 

Autumn Haze by Peter Bergeron

 

 

가을... 누군가 그리워 질 때 떠오르는 최영미님의 시가 하나 있다.


 

가을에는...

내가 그를 사랑한 것도 아닌데
미칠듯 그리워질 때가 있다.
바람의 손으로 가지런히 풀어놓은
뭉게구름도 아니다
양떼구름도 새털구름도 아니다
아무 모양도 만들지 못하고
이리저리 찢어지는 구름을 보노라면
내가 너를 그리워한 것도 아닌데
그가 내 속에 들어온다
뭉게뭉게 피어나 양떼처럼 모여
새털처럼 가지런히 접히진 않더라도
유리창에 우연히 편집된 가을 하늘처럼
한 남자의 전부가 가슴에 뭉클 박힐 때가 있다
무작정 눈물이 날 때가 있다
가을에는, 오늘처럼 곱고 투명한 가을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표정으로 문턱을 넘어와
엉금엉금, 그가 내곁에 않는다
그럴 때면 그만 허락하고 싶다
사랑이 아니더라도, 그곁에 키를 낮춰 눕고 싶다


 

예전에 어떤 음반사에서 비탈리의 샤콘느 다음으로 세상에서 두번째로 픈 음악이 바흐의 샤콘느라고 하던 광고문구가 생각난다. 샤콘느는 바흐의 작품《무반주 파르티타》중에서 알르망드,쿠랑트, 사라방드, 지그에 이어지는 마지막 5악장이다. 바흐만이 가지고 있는 풍부한 환상과 격조에 가득찬 샤콘느의 악상은 어설픈 연주로는 감히 표현하지 못할 고귀한 이미지가 담겨있다. 당당한 느낌의 테마는 30여회에 걸쳐 변주되며 반복된다. 샤콘느는 무곡임에도 그 고결한 멜로디는 끝없이 맑고 그지없이 아름다운 환상을 잉태하는듯 하다. 바흐의 샤콘느와 함께 가을의 서정은 하염없이 깊어만 간다.

 

 

 

Partjta for Violin Solo No.2 in D minor

BWV 1004,5. Ciaccona

 

Rachel Podger/Baroque Vio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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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프랭크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