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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0. 31. 10:51

단테 & 리스트 음악에 부쳐/클래식 칼럼2014. 10. 31. 10:51

 

 

 

 

회색빛으로 희뿌옇게 물든 우중충한 하늘이 왠지 프라하의 날씨를 연상케 한다. 저 하늘위 우주공간 속에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하나님이 사는 나라는 대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문득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에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다.

 

오래전 읽었던 단테의 <신곡 - The Divine Comedy>... 그 책 속에는 천국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1307년경부터 쓰기 시작하여 1321년에 가서야 완성을 본 단테 최대의 역작 <신곡>은 단테 자신의 영혼 성장기와 다름없기에 감수성 예민한 청소년기에 꼭 한번 읽어둘만한 작품이다.

 

 

 

 

< 지옥-Inferno> <연옥-Purgatorio> <천국-Paradiso> 모두 3부로 구성된 <신곡>의 스토리는 대략 이러하다. 단테는 33살 되던 해, 성 금요일의 밤에 길을 잃고 칠흙같이 어두운 숲속에서 갈등과 번민으로 하룻밤을 지샌 뒤, 빛이 쏟아지는 언덕 위로 올라가려 한다. 그러나 3마리의 야수가 나타나 길을 막아선다. 그 때 베르길리우스(단테가 존경했던 詩聖 버질을 상징함)가 나타나 단테를 구해 주고 저승으로 길을 인도한다. 그는 단테를 지옥과 연옥의 산으로 안내한 후 천사 베아트리체에게 인계한다. 베아트리체에게 천국으로 가는 길을 인도받은 단테는 천국에서 하나님을 영접하게 된다.

 

 

"콩세르 세 므와"... 프란츠 리스트가 한 말이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콘서트,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라는 뜻이다. 대 피아니스트로서 얼마나 자신만만했기에 이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사실 리스트 이전까지의 콘서트는 마치 뷔페식 레스토랑과도 같은 것이었다. 먼저 관현악단의 서곡 연주로 공연이 시작됨을 알리고 가수가 나와 오페라 아리아를 한 곡 부른다. 그 뒤를 이어 실내악 앙상블의 연주를 들려주고 독주자가 등장해 자신의 멋진 솜씨를 들려준 뒤, 다시 관현악단이 나와 교향곡의 한 두개 악장을 연주하는 것으로 공연을 마쳤다고 한다.

 

그러나 리스트는 이런 음악회에서 자신의 뛰어난 천재성을 뽐낼 수 없었다. 그는 오직 자신만의 연주로 콘서트를 열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독점했던 최초의 피아니스트였다. 13세 때부터 연주여행을 시작했던 피아노의 신동 리스트는 서두에 언급한 단테를 비롯하여 바이런의 작품에도 심취했을 만큼 문학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리스트는 피아노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피아노는 나의 자아이자 나의 삶이며, 나의 모국어이다. 나는 피아노를 통해 나의 꿈과 기쁨 그리고 슬픔을 표현한다." 이처럼 리스트는 진정으로 피아노를 사랑했고 자신의 재능을 확신하였기에 고전음악사에 빛나는 피아노의 대가가 될 수 있었다.

 

 

 

 

리스트를 말하면서 쇼팽과의 관계를 빼놓을 수 없다. 고전음악사에서 리스트(1811~1886)와 쇼팽(1810~1849)은 비슷한 시대를 살면서 피아노 곡을 하나의 독립된 장르로 자리매김시킨 장본인들이다. 두사람에게서 비슷한 점을 찾는다면 둘 다 당대의 뛰어난 피아니스트였으며 같은 동구권 출신에, 조국의 숨결이 담긴 곡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쇼팽의 <마주르카>와 <폴로네이즈>는 자신의 조국 폴란드의 민속 무곡을 바탕으로 작곡한 곡이며, 리스트의 <헝가리안 랩소디>는 자신의 조국 헝가리의 민속 무곡을 소재로 한 곡이다.

 

 

쇼팽, Mazurkas Op. 6, No.1-4

Vladimir Ashkenazy/피아노

 

쇼팽, Andante spianato and Grande Polonaise Brillante

Evgeny Kissin/피아노

 

리스트, 헝가리안 랩소디 2번 C#단조

Lang Lang/피아노

 

 

 

 

우연인지 모르지만 그들 작품을 살펴보면 <피아노 소나타 B단조>가 들어 있으며, 또한 자신들의 피아노 기법을 체계화시킨 <에튀드-연습곡>도 있다. 쇼팽은 24곡의 에튀드를 통해 피아노가 지닌 섬세한 표현력을 극한까지 끌어 올리면서 피아노에 담긴 정서적인 면을 개척한 반면, 리스트는 23곡의 에튀드를 통해 피아노가 지닌 메카니즘을 극대화시키면서 비르투오적인 피아노 테크닉을 개척하였다. 이런 이유로 두 사람은 피아노 음악에 있어 '파이오니어' 같은 존재라고 아니 할 수 없다.

 

 

쇼팽, 피아노 소나타 3번 B단조

Maurizio Pollini/피아노

 

리스트, 피아노 소나타 B단조

Martha Argerich/피아노

 

그렇다면 그들 이전에는 <에튀드>가 없었을까? 물론 그 답은 No! 그들 이전에도 이미 피아노를 위한 에튀드가 존재하고 있었다. 우선 이태리의 클레멘티의 에튀드가 있었으며, 그의 제자인 만하임의 크라머, 베토벤의 제자였으며 리스트의 스승이기도 한 체르니 역시 에튀드를 작곡한바 있다. 그러나 그들이 작곡한 <에튀드>는 피아노 테크닉을 다듬거나 대곡을 연주하기 전에 간단히 연습하는 곡에 불과했다. 그러나 쇼팽과 리스트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에튀드>가 하나의 작품으로 당당히 연주될 수 있도록 생명을 불어 넣었다.

 

 

 

 

리스트의 작품 중에서 가장 파풀러한 곡은 앞에서 소개한 <헝가리안 랩소디>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너무도 많이 들어 온 곡일 뿐만 아니라 리스트의 비르투오조적인 피아니즘을 느끼기엔 뭔가 부족한 감을 느낀다. 결국 손이 자주 가는 곡은 <피아노 소나타 B minor>와 <피아노 콘첼토 1번 & 2번>이다. 리스트가 남긴 단 한편의 피아노 소나타이자 나에게 가장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피아노 소나타 B minor>를 듣고 있노라면 리스트가 젊었을 때 심취했던 단테의 <신곡>이 떠오른다.

 

 

리스트, 피아노 콘첼토 1번 Eb장조 S.124

Sviatoslav Richter/피아노

 

리스트, 피아노 콘첼토 2번 A장조 S.125

Sviatoslav Richter/피아노

 

 

< 신곡>의 서두엔 “어두운 숲을 헤맨다”는 표현이 나온다. 이것은 35세때 단테가 당파싸움의 희생자가 되어 유랑의 길을 떠나기 직전의 처절한 심정을 그리고 있는데... 그의 인간적인 양심과 예지 그리고 신앙에 대한 신념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고난의 길을 체험한 단테는 결국 그는 인간을 구원하려면 자신이 지옥으로 먼저 들어가 인간이 범한 죄악의 실체를 파악하고 하나님이 이를 심판하는 것을 지켜보기로 결심한다. 그러한 단테의 사상을 리스트의 피아노 소나타에서 찾는다면 나의 지나친 비약일까?

 

 

 

 

악장 구분없이 약 30분동안 연주되는 <피아노 소나타 B minor>는 소나타의 전형적인 모습에서 탈피한 새로운 형식의 작품이다. 젊었을 때 추구했던 현란한 테크닉을 억제한 채 한층 깊어진 음악 세계를 판타지와 열정으로 담아낸 이 작품엔 그의 모든 피아니즘이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복잡한 듯 하면서도 통일감있는 주제 선율, 꿈꾸는 듯한 멜로디와 다이내믹한 전개, 그리고 비르투오조의 솜씨로 치닫는 클라이막스... 모든 것이 완벽하리만큼 잘 어우러져 있다.

 

선 굵은 터치와 영웅적인 악상이 담긴 <피아노 콘첼토 제1번> 또한 리스트의 역작이다. 1악장 알레그로 마에스토소, 장엄한 관현악의 서주에 이어지는 즉흥곡 풍의 아름다운 선율... 고독한 바이올린의 선율에 이어지는 폭발적인 피아노 터치는 리스트에게서 느낄 수 있는 거장다운 피아니즘이다. 이 곡을 듣고 있으면 수많은 청중들이 모인 초대형 콘서트 무대의 피아노 앞에 앉아 현란한 테크닉으로 자신의 음악세계를 과시하는 거장의 모습이 떠오른다. 리스트가 피아니스트들에게 있어 신화적인 존재로 자리매김 되는 것은 그의 뛰어난 연주력과 음악성에도 있지만 무대에 서기를 두려워 하지 않았던 그 당당함 때문이기도 하다.

 

 

 

 

부드럽고 아름다운 느낌의 2악장 아다지오, 현악과 목관파트와의 다정한 대화가 아름답다. 사실 피아노 콘첼토란... 관현악 단원들과 피아니스트의 치열한 경연장이다. 그 중에서도 백미는 역시 피아니스트가 자신의 기량을 화려한 테크닉에 실어 분출시키는 솔로 패시지 부분이다. 피아노 콘첼토에 있어 관현악과의 조화도 중요하지만 곡의 전체적인 흐름을 주도하는 것은 역시 피아노이다. 피아노란 악기는 그 자체로서 완벽한 오케스트레이션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3악장 알레그로 비바체, 소곤거리듯 들려오는 트라이앵글... 웅장하게 울려 퍼지는 피아노 그 아름다운 속삭임... 4악장 알레그로, 행진곡 풍의 당당한 모티브가 대미를 장식한다.

 

단테가 사랑했던 여인 베아트리체... 둘의 인연은 단테의 나이 불과 9세 때의 일로서 그보다 한 살 아래인 베아트리체를 만난 단테는 천사같은 그녀에게서 순수한 사랑과 찬미의 감정을 품게 되는데... 9년 후 길에서 우연히 그녀를 다시 보게된 단테는 다시 한번 베아트리체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체험한다. 그 후로 베아트리체는 영원히 그의 가슴 속에 살아 숨쉬는 여인으로 남게 되고 단테는 그의 최대 걸작인 <신곡>에 그녀를 향한 진실한 사랑을 담아 놓게 된다.

 

 

 

 

아마도 리스트는 단테의 <신곡>을 읽으며 자신이 사모했던 또 한사람의 베아트리체를 피아노라는 붓을 사용해 음악이란 캔버스에 그려낸 것은 아닐까? 이처럼 문학 속에 담겨 있는 사랑 이야기는 음악 세계에서 또 다른 모습으로 살아 숨쉬게 된다. 우리가 고전음악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 또한 그런 이유 때문 아닌지... 리스트의 <사랑의 꿈 - Liebestraum>을 들으며... 나 또한 꿈속에서 아름다운 여인 베아트리체를 그려본다. 그녀에게 나는 무엇이 될 수 있을까?...

 

 

리스트, Liebestraum(사랑의 꿈)

Lang Lang/피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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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프랭크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