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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8. 12. 10:18

포켓맨 일상 속에서/나의insight2013. 8. 12. 10:18

 

 

화양리에 있는 세종대학엘 볼 일이 있어서 갔다. 정문이 경복궁처럼 고풍찬연한 대궐문이다. 옛날 대궐을 드나들던 사람은 정승이나 판사 등의 고위 관리 그리고 무수리같은 평민들이었다. 나는 정승 자격으로 입궐한 사람이라 생각하고 어깨를 딱 펴고 활보했다. 무수리 청년?의 성실한 안내를 받으며 학교 이곳저곳을 돌아보았다. 작은 캠퍼스라 그런지 둘러보는데 그리 많은 시간이 들지 않았다.

 

작은 공간은 위압감이 없어서 좋다. 무엇보다 짧은 시간에 자기의 실체를 보여주어서 더욱 좋다. 사람도 작았으면 좋겠다. 작은 사람이란 몸이 작다는 생물학적 특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짧은 시간내에 자신을 소개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일전에 어떤 강의를 들으러 간 적이 있다. "00연구소 박사님이십니다. 박수로 환영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소개하면 그만일텐데, 사회자는 무려 5분이나 강사의 약력을 소개하며 이 강사가 얼마나 대단한 분인가를 알리려 하였다. 그 강사의 약력은 말 그대로 藥의 힘(力)이 있었다. 초강력 수면제를 다량 살포하여 세미나실을 침실로 바꿔놓았으니 말이다. 이보다 더 신기한 것은 그 강사에 대해 5분 이상의 설명을 듣고서도 나는 그 강사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그저 얼굴이 말처럼 길다는 것 외에는. 

 

손에는 한 사람의 인생역정이 담겨져 있다고 한다. 그래서 옛어른들은 손만 보고도 그의 삶을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고 한다. 손은 한 호흡만큼의 시간만으로도 충분히 한 사람을 설명해준다. 손바닥에 새겨진 굳은 살 한점에 오랜 풍파의 한숨을 짐작할 수 있고, 매끄러운 손톱의 가지런함을 통해 삶의 단정함을 읽을 수 있다. 작은 사람이란 바로 손과 같은 것일게다. 손에 박힌 굳은 살처럼 삶의 단초를 공개함을 통해 자신을 설명하는 사람. 나에 대해 추측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 대해 확신을 갖도록 증거를 보여주는 사람. 그래서 만난지 하루만에 10년지기의 앎을 추월하게 만드는 사람이 내가 그리는 작은 사람이다.

 

내가 한반도를 사랑하는 이유도 그러하다. 작은 땅덩어리의 한반도는 자기 안으로의 접근을 쉽게 허용한다. 백두에서 한라까지 불과 2000리 길이다. 좌우를 살피며 가도 70평생 작정하고 걸으면 걸을 수 있는 곳이요 볼 수 있는 땅이다. 자기를 다 보지 못하고 죽는 사람이 없도록 한반도는 작은 땅으로 백성을 품고 있다. 알려고만 하면 쉽게 알 수 있는 한반도는 그래서 쉽다는 이유로 모진 침략을 받아야 했다.

그래서일까.. 이 땅의 백성은 반대급부로 비밀은 미덕이요 전략적 사고로 여기며 산다. 그래서 ‘있어도 없는 척, 없어도 있는 척’ 하는 것이 지혜라고 배우며 자란다. 남자는 슬픔을 겉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고 세뇌받으며 자란다. 얼굴은 언제나 근엄함이라는 단 하나의 표정만 배우며 굳어진다. 그래야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생존을 못해도 작은 사람으로 살고 싶다. 이용당해도 작은 사람으로 살고 싶다. 이름으로 알려지는 존재가 아니라 삶으로 알려지는 사람이 되고싶기 때문이다. 내 삶의 구석구석을 훑어지나가게 만들어 하루만에 “당신이 누구인지 알겠습니다”라는 끄덕임을 선물하고 싶다. 어제 학교에서 만난 분도 아주 작은 사람이었다. 삶을 짊어지기에는 너무 좁은 어깨를 가진 사람. 하지만 자기를 담기에는 충분한 마음을 가진 그런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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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프랭크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