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에 쓰는 음악편지 음악에 부쳐/클래식 칼럼2014. 9. 8. 13:33
Autumn / Lucien Lévy-Dhurmer
슬픈 눈을 가진 여인이 흘리는 눈물처럼, 뚝뚝 떨어지는 차디찬 아침이슬을 온몸으로 받아내던 가로수 이파리들이 점점 땅에 주저앉아 버리는 가을이다. 한적한 고궁을 거닐다가 쌓여있는 낙엽과 하릴없는 듯 우두커니 앉아있는 두 노인네를 바라보며 깊은 사색에 잠길 때, 우리는 철학자가 되고 시인이 된다. 절대 고독의 공간 속에 놓여있는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그 순간 만큼은 오직 나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시간이 아닐 수 없다. 너무도 아름답기에 슬퍼보이는 이 가을... 이해인시인이 쓴 가을 노래에 그리움은 더욱 깊어만 간다.
가을 노래
가을엔 물이 되고 싶어요
소리를 내면 비어 오는
사랑한다는 말을
흐르며 속삭이는 물이 되고 싶어요
가을엔 바람이고 싶어요
서걱이는 풀잎의 이마를 쓰다듬다
깔깔대는 꽃 웃음에 취해도 보는
연한 바람으로 살고 싶어요
가을엔 풀벌레이고 싶어요
별빛을 등에 업고
푸른 목청 뽑아 노래하는
숨은 풀벌레로 살고 싶어요
가을엔 감이 되고 싶어요
가지 끝에 매달린 그리움 익혀
당신 것으로 바쳐 드리는
불을 먹은 감이 되고 싶어요
- 이해인 -
폭풍의 언덕에 서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여인에게 가을 편지를 쓴다. 종이 편지지에 내가 그린 가을의 서정을 빼곡하게 적어 놓고 PRANG 색연필로 사인을 한 뒤 곱게 접어 종이 봉투에 담는다. 그리고 겉봉에 우표 대신 낙엽을 한 장 붙이고 '그리운 그대에게'라고 쓰겠다. 언젠가 내 편지를 읽을 때 슈만의 <피아노 사중주>가 흐르길 기대하며...
고전음악 작곡가 중에서 아내에게 곡을 바친 최고의 남편을 고르라면 슈만을 꼽아야 할 것이다. 눈을 감기 전까지 그의 가슴은 클라라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했다. 그가 쓴 대부분의 곡들은 피아니스트였던 클라라를 염두에 두고 쓴 것들이었다. 게다가 두 사람 사이에는 여섯 자녀가 있었다니 그들의 사랑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짐작이 간다.
슈만이 쓴 실내악 중에서 <피아노 4중주>는 고전주의적인 형식을 바탕으로 낭만적인 멜로디가 덧칠되어 있어 슈만이 지향하는 음악세계를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그가 쓴 다른 기악곡들이나 예술가곡 또한 마찬가지. 슈만과 클라라와 동고동락하다시피 했던 브람스가 고전주의를 지향했던 까닭 또한 슈만의 그러한 음악적 면모를 이어받은 탓일거다.
4대의 현악기로 연주되는 곡을 <현악 4중주>라고 말하고, 현악기 3대와 피아노가 함께 연주되는 곡은 <피아노 4중주>라고 한다. 현과 피아노의 고유한 칼라를 살려내면서 음악의 하모니를 이루어내기란 참 쉽지 않은 일이다만... 슈만은 예술가곡에서도 그러했듯이 피아노라는 악기에 자신의 영혼을 담아내고 있어 더욱 진한 감동을 준다.
Still Life of Fruit / Oliver Clare
지난 주 늦은 밤, 사무실 벽 틈에서 들리는 귀뚜라미소리에 하던 일을 멈추고 한참을 귀기울였다. 시인의 말처럼 과연 별빛을 등에 업고 목청 뽑아 노래를 하는가? 궁금해 하는 마음으로 그 소리를 듣다가 귀뚜라미 울음소리를 표현하는 악기는 무얼까.. 생각을 해보았다. 쓸쓸한 귀뚜라미 소리에는 첼로가 제격이 아닐까...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가을의 머리에 있는 한가위 추석이다. 풍성한 가을을 대표하는 과일하면 역시 달콤한 포도이다. 슈만의 피아노 4중주, 3악장 안단테 칸타빌레는 슈만의 로맨티시즘이 너무도 달콤하고 아름답게 그려진... 청명하고도 쓸쓸한 계절을 표현하는 악장이다. 12줄의 현과 88개의 건반에 실린 멜랑꼬릭한 선율을 타고 가을의 고적한 리리시즘이 청명한 가을하늘의 구름을 따라 흘러간다. 어쩌면 그는 클라라와 가을의 라인강변을 걸으며 이 곡을 구상했을지도 모르겠다.
낮잠 / Jean-François Millet
허름한 이발소나 음식점 벽에 걸린 밀레의 그림들을 기억한다. 하다못해 교과서에 실린 그의 그림은 얼마나 엄숙하고 어둡고 또 지나치게 유명했던가... 처음엔 그의 그림들이 너무 무거워서 진정 가슴으로 들어오기까지 나에겐 오랜 세월들이 필요했다. 그러던 중.. 어느 가을에 밀레의 화집을 선물 받고 그림책을 펴는 순간!.. 난 일 분도 안되어 눈물이 쏙 났다. 그리고 책을 읽듯이 천천히 그리고 자주 밀레를 만났다. 그의 마음에 넘쳐나는 대지와 인간에 대한 사랑, 그 뜨거운 철학이 내 가슴에 팍 꽂히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가을걷이를 하던 중, 건초더미에 쓰러져 단잠에 빠져있는 농군부부의 모습.. 너무나 행복한 쉼이다. 지난 일년동안 수고한 사람들에게 하늘은 기쁨의 계절을 여지없이 선사한다. 추석... 여인네들에겐 녹두부침 지지느라 코에서 기름냄새가 진동하고 지친 몸에 칼질하다가 그만 손을 베이기도 하는 별로 즐겁지만은 않은... 그러나 고향을 향하는 모두에게 달콤한 쉼이 있는 명절이길 간절히 소망한다.
그 옛날 학교 다닐 때 음악책에서 자주 보던 얼굴아닌가? 그렇다. 그 유명한 미국의 Stephen Foster이다. 그가 작곡한 노래 중에 우리의 귀에 익은 곡들이 많다. Old Black Joe, Oh Susanna..그리고 Beautiful Dreamer가 있다. 명절선물로 이 노래를 올린다. 쑥스럽고 잘은 못부르지만...^^
☜ 이십오년의 명절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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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humann, Piano Quartet in E Flat Major Op.47
Emanuel Ax / piano, Jaime Laredo / viola Yo-Yo Ma / cello, Isaac Stern / violin
Andante cantab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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