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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로 접어든 요즘, 맑게 개인 파란 하늘이 너무도 아름답다. 태풍이 잠깐 뿌리고 간 비 덕분에 공해로 찌든 서울 어디서나 도봉산과 북한산 자락이 선명하게 시야에 잡힌다. 시골 논밭엔 황금물결이 일렁이고 아침 저녁으로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는데... 예전에 다녀온 중국 도문(圖們)의 밤 하늘에 찬란히 빛나는 별들을 보면서 생각났던 브람스《혼 트리오》에서의 아늑한 느낌 속에 사각사각 깊어가는 가을의 발자욱 소리가 여름내내 가을을 기다리던 고독한 자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가을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악가는 역시 요하네스 브람스... 【브람스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책을 읽었다. 브람스의 음악은 가을과 많이 닮았다. 웅장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쓸쓸함이 묻어나는 그의 음악이 가을이 주는 느낌과 비슷하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온 그의 삶이 그런 느낌을 주는지 모르겠다. 당시 뒤셀도르프에 거주하던 슈만 그리고 슈만의 부인 클라라와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된 것은 그의 나이 20살 때 일이다. 푸른 눈을 가진 아름다운 금발의 청년이 당대의 음악가 슈만과 당대의 피아니스트 클라라 앞에서 연주한 곡은 자신이 작곡한 <피아노 소나타 C minor>. 브람스의 연주를 듣고난 후 두 사람은 브람스의 천재적인 음악성에 완전히 매료당해 평생동안 그를 후원하게 된다.



 

 

Brahms Piano

정신병이 악화된 슈만이 라인강에 투신 후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자 6명의 자녀와 아기를 임신하고 있던 클라라는 살아갈 길이 암담했다. 브람스는 실의에 빠진 클라라를 위해 <슈만 주제에 의한 변주곡>을 써서 그녀를 기쁘게 했다. 브람스보다 14살 연상이었지만 지적이고 아름다운 용모를 지녔던 클라라는 브람스에게 있어 완벽한 여성의 표상이었다. 그러나 클라라는 이성적인 태도로 그의 열정을 음악으로 향하게 만들었다.

혹자는 브람스가 평생동안 클라라 만을 연모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에게도 첫사랑은 있었다. 나이팅게일 같은 목소리를 지녔던 매력적인 아가씨 아가테 폰 지볼트와 사랑에 빠진 25살의 청년 브람스는 <현악 6중주 2번> 첫번째 악장에 그녀의 이름 A-G-A-(T)H-E 를 조(調)로 옮겨 놓는다. 아가테에게서 성녀 마리아의 모습을 발견했던 것일까? 브람스는 아가테와 사랑에 빠져있는 동안 <아베 마리아>를 작곡하기도 했다.

 

  

 

 

 

그런데 브람스는 왜 그녀와 결혼하지 않았을까? 결혼은 속박이라고 생각한 브람스는 아가테에게 이별의 편지를 한통 써서 보냈다. 아가테는 브람스의 편지를 읽고 심한 충격을 받았지만 더 이상 그에게 미련을 갖지 않았다. 훗날 아가테는 브람스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그는 대부분의 천재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인류애에 빠져 있었다 (중략) 여자가 아무리 커다란 사랑을 준다해도 그것만으로 그의 삶은 채워지지 않았다." 브람스와 아가테의 짧은 사랑은 이렇게 끝이 났다.

브람스는 음악가로 데뷔한 이후 그의 고향 함부르크 필하모닉의 지휘자 자리를 그토록 염원했건만 함부르크 음악협회는 번번이 그를 외면했다. 음악가로서 자존심이 상했는지 슬럼프에 빠져버린 브람스는 아돌프 폰 샤크의 시에 곡을 붙인 가곡 <가을 느낌 - Herbstgefühl>을 작곡한다. 이 곡은 브람스의 염세적인 인생관이 담겨 있으며 전편에 흐르는 쓸쓸한 곡의 분위기는 가을의 고독과 우수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 Herbstgefühl

 

 

가을 느낌


여름의 마지막 남은 꽃
서늘한 바람에 시름시름 앓고 있고,
여기저기서 이젠 노랗고 붉게 변한
잎사귀 하나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데,

밤처럼 어둑어둑하고 차가운 날이
오 가슴이여, 왜 죽음을 앞에 두고
끊임없이 고동치며 떨고 있는가?

보라, 이파리 다 떨어진 덤불을!
관목에 나부끼는 바람처럼 왜
아직도 마지막 사라져 가는 기쁨을 구하려 하는가?
마음 편하게 가져라 - 그들도 곧 죽을 테니.

 

- Adolf Friedrich Graf von Schack -

 

 

 

이 곡을 쓸 당시 브람스는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심한 허탈감에 빠져 절망과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무려 17살이나 연상이었는데...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을 받으며 성장한 브람스가 클라라에게서 모성애를 느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클라라는 브람스의 누나이자 어머니같은 존재였으며 음악의 조언자는 물론 연인의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다. 아무튼 브람스는 어머니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독일 레퀴엠>을 작곡하고 1894년 자신의 지휘로 초연하여 극찬을 받았다. 그의 나이 34살 때의 일이다.

《독일 레퀴엠 - Ein Deutsches Requiem》은 전통적인 카톨릭 미사에 사용되는 라틴어가 아닌 독일어로 쓰여진 것으로, 마틴 루터의 성서를 곡의 가사로 쓰고있다. "애통(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요.."와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가 실린 제1곡으로부터 제7곡에 이르기까지 고결한 내용의 가사가 합창으로 구현된 브람스의 최고 걸작이다.

 

독일 레퀴엠, Op.45 제 1곡

1. Selig Sind, Die Da Leid Tragen

 

 

Selig sind, die da Leid tragen, denn sie sollen getröstet werden. Matth. 5,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태복음 5장 4절)

Die mit Tränen säen, werden mit Freuden ernten. Sie gehen hin und weinen und tragen edlen Samen, und kommen mit Freuden und bringen ihre Garben. Ps.126, 5.6.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편 126장 5,6 절) 

 

 

 

 

 

 

브람스는 시가를 물고 검소한 차림으로 산책을 했는데 위 앨범 자켓에서 보다시피 고슴도치 한마리가 동행하고 있다. 고슴도치가 왜 그를 따라 다닐까? 비엔나에서 지낼 때 브람스는 <붉은 고슴도치>라는 이름을 가진 조그만 레스트랑에서 식사를 했다. 이 곳은 베토벤이 자주 들리던 곳. 브람스는 베토벤이 앉았던 자리에서 식사를 하며 베토벤의 후계자를 꿈꿨을지도 모른다. 진한 커피 한잔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아침 산책을 즐겼던 음악가 브람스!!! 가을의 향기가 그의 음악 속에 담겨있다.

휴일 오후, 브람스의 레퀴엠을 들으며 그에게 윤동주의【편지】라는 詩를 나의 편지에 담아 보내주고 싶다.

 

 

 

 

 

편지 / 윤동주

 

 

그립다고 써보니 차라리 말을 말자

그냥 긴 세월이 지났노라고만 쓰자

 

긴긴 사연을 줄줄이 이어

진정 못 잊는다는 말을 말고

어쩌다 생각이 났노라고만 쓰자

 

그립다고 써보니 차라리 말을 말자

그냥 긴 세월이 지났노라고만 쓰자

 

긴긴 잠 못 이루는 밤이면

행여 울었다는 말을 말고

가다가 그리울 때도 있었노라고만 쓰자

 

 

 

 

브람스 형, 그런다고 누가 모르나요?

아직도 아프다고 쓰세요.

긴 세월이 지나고 그리움과 상처가 딱지가 되어 떨어질 때까지는

욱신거리는 아픔에 마음으로 고름이 흐를 거라고 쓰세요.

 

어쩌다가 한 번씩 생각난다고 하지 말고,

숨 쉬는 매 순간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 생각에

숨 쉬는 일조차 힘겨울 때가 많다고 쓰세요.

 

그리우면 그립다고 쓰세요.

벌써 긴 세월이 지났는데

마음은 아직도 달력 한 장 못 넘기고 있다고 쓰세요.

 

잠 못 이루는 밤에는 혼자 눈물도 난다고 쓰세요.

행복하면 행복한대로, 외로우면 외로운대로

그립고 생각난다고 쓰세요.

 

그래도 괜찮아요.

지금은 가을이고, 새벽이고...

어차피 이 편지는 보내지도 못하고

아침이면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일상을 맞아야 한다는 것을

당신도 이미

알고 있으니까요.

 

정말로 괜찮은 척,

이미 지나간 추억으로 묻어버린 척 하는 시인의 시가

오히려 더 슬프고 아프다는 걸

브람스 형, 당신도 이미

알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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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프랭크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