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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lower Picker 1900  / Waterhouse



 

바람 부는 날이면 / 황인숙

아아 남자들은 모르리

벌판을 뒤흔드는

저 바람 속에 뛰어들면

가슴 위까지 치솟아 오르네

스커트 자락의 상쾌



가끔 이 시가 기억날 때가 있다. 2년 전, 지인들과 지리산 천왕봉을 오를 때 안개비가 내리는 가운데 구름이 온통  산자락을 덮고 있었다. 그 구름은 나를 포근하게 감싸 안아주는 느낌이었고 난 그 구름을 까치발로 걷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늘을 향해 걸어가는 느낌을 무어라 표현할 수 있을까. 남자들이 스커트를 입은 여인의 상쾌한 마음을 어찌 알랴. 그러나 그날, 난 스커트를 입고 산행하는 기분이었다. 이제는 알 것 같다. 스커트를 입었을 때의 상쾌함을.

 

8월을 보내는 비가 내린다. 여름의 마지막 비가 내 좋아하는 가을을 초대하며 서서히 떠나간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온 마음을 그리움의 비로 흠뻑 적시는 일이다. 그 사람이 알아주지 않아도 어쩔 수가 없다. 온 가슴을 그 사람 이름 하나로 채우고 있다는 걸... 잿빛 구름 사이로 비 내리는 날은 온통 그 사람의 체취와 숨결에 젖을 수 밖에 없는 마음을... 아아 여자들은 모르리.


 

8월의 마지막 주간. 마지막이란 단어는 조금은 슬픈 느낌을 준다. 마지막이라고 하면 "다시.."라는 것은 없는 것이기에...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2013년의 8월을 보내며 워터하우스의 그림에 실린 아련한 그리움에 빠져든다. 꽃따는 아가씨의 표정 또한 아름다운 8월이 가는 것을 못내 아쉬워하는 듯 하다. 위대한 음악가로 살았지만 절대 고독을 비껴가지 못했던 브람스... 그의 8월은 어떠했을까? 그의 작품 중에는 워터하우스의 그림을 연상케 하는 예술가곡이 하나 있다.


 


Minnne Lied - 사랑의 노래

 

Holder klingt der Vogelsang,
새소리가 더욱 사랑스럽게 울립니다,

Wenn die Engelreine,
순수한 천사가 하나 있어,
Die mein Junglingsherz bezwang,
젊은 내 마음을 송두리째 앗아간 뒤,
Wandelt durch die Haine.
숲 속을 거닙니다.


Roter bluhet Tal und Au,
계곡과 목초지에는 붉은 꽃이 피어나고,
Gruner wird der Rasen,
잔디는 초록으로 변해갑니다,

Wo die Finger meiner Frau
그 곳에서 사랑하는 나의 연인이
Maienblumen lasen.
오월의 꽃들을 주워 모았습니다.


Ohne sie ist alles tot,
그녀가 없으면 모든 것은 죽어 버리고,
Welk’ sind Blut’ und Krauter;
꽃과 채소들도 시들며;
Und kein Fruhlingsabendrot
봄의 저녁 노을도
Dunkt mich schon und heiter.
내게는 아름답지도 기쁘지도 않습니다.


Traute, minnigliche Frau,
사랑하는 사람이여, 사랑하는 여인이여,
Wollest nimmer fliehen,
당신은 결코 내 곁을 떠나선 안됩니다,

Dass mein Herz, gleich dieser Au,
나의 마음은 목초가 피어나는 것처럼,
Mog’ in Wonne bluhen!
환희 속에 꽃을 피우길 원한답니다!



 

짝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간절한 사랑의 고백인가. 이 가곡은 27살의 젊은 청년음악가 브람스가 독일 시인 요한 하인리히 포스의 시에 붙인 것이다. 사랑하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는데... 브람스 역시 예외는 아니었나 보다. 그는 한 때 사랑했던 여인 아가테에 대한 기억을 <현악 6중주 2번>에 담기도 했지만, 이 곡이 클라라에 대한 연모의 정을 그려낸 것이라는 것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여기 신이 내려보낸 듯한 사람이 와 있다! 그는 우리 앞에서 자신이 작곡한 소나타와 스케르초를 연주했다. 모두 풍부한 환상, 깊은 정서 그리고 거장풍의 형식을 갖춘 작품이었다. 로베르토는 그의 작품에서 고칠 부분이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피아노 앞에 앉아있는 그를 보는 것, 연주할 때 흥미롭게 변하는 그 젊은이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 아무리 어려운 부분이라도 쉽게 극복해 나가는 그의 연주를 보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의 놀라운 작품들을 대하고 있는 것은 실로 감동적이었다.

 

 

클라라가 브람스를 집에서 처음 대면한 뒤 자신의 일기장에 남겨놓은 글이다. 그녀가 남긴 기록만 봐도 젊은 날의 브람스가 얼마나 전도유망하고 매력적인 작곡가 지망생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지 않은가? 브람스를 바라보는 클라라의 이런 시각이 있었기에 두 사람은 14살이나 되는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평생토록 음악적 교감을 나눌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 이상의 감정까지...



 



브람스가 음악가로 성장하는데 있어 슈만과 클라라의 역할은 너무도 컸다. 슈만은 자신이 운영하던 음악신보의 평론을 통해 브람스의 음악을 격찬해 마지 않았다. 당대의 여류 피아니스트였던 클라라 또한 브람스의 작품을 자청해서 연주해 주었으며 자상하게 곡에 대한 평가까지 해주었다. 브람스에게 있어 슈만과 클라라는 음악 선배이자 동료였으며 더 나아가 부모와도 같은 존재였다.

예술가곡이란 시의 내용과 형식 그리고 언어가 빚어내는 아름다운 뉘앙스를 음악적 이미지로 그려낸 것. 가곡에 부쳐진 시는 대부분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다. 슈만 역시 클라라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수많은 가곡에 담아냈다. 그 중에서도 연가곡집 <시인과 사랑>은 사랑이란 주제를 품격높은 선율에 실어낸 슈만의 최고 역작이다. 슈만은 이 연가곡집의 첫 곡을 하이네의 시에 부쳤다.


Dolce Far Niente [Sweet Nothings] 1880  / Waterhouse


Im Wunderschönen Monat Mai - 아름다운 5월에

Im wunderschönen Monat Mai,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에,
Als alle Knospen sprangen,
모든 꽃이 활짝 피어날 때,
Da ist in meinem Herzen
나의 마음 속에서도
Die Liebe aufgegangen.
사랑의 꽃이 피었어라.


Im wunderschönen Monat Mai,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에,
Als alle Vögel sangen,
모든 새들 노래할 때,
Da hab' ich ihr gestanden
나의 불타는 마음을
Mein Sehnen und Verlangen.
사랑하는 이에게 고백하리라.


 

 

 

 

 

Fritz Wunderlich-tenor

Hubert Giesen-piano 

 

 

 


 

 

 

이 곡의 텍스트는 서정시인 하이네의 시집 '노래의 책'에 수록되어 있는 것으로 젊은 시절 하이네의 해맑은 서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당시 클라라와 사랑에 빠져있던 슈만으로서는 하이네가 쓴 아름다운 시에 홀딱 반하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하이네와 슈만은 비록 활동 분야는 달랐어도 눈으로 보는 것! 귀로 듣는 것! 모두 아름다운 그림이나 음악으로 비춰졌을게 틀림없다.

그런데 하이네가 이처럼 아름다운 시로 사랑을 노래하게 된 까닭은 실연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것이었다. 하이네는 부유한 친척 아저씨의 딸 아말리아와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부모의 반대로 그들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아말리아는 다른 사람과 결혼해 버렸다. 하이네는 그로 인해 가슴에 심한 상처를 입었지만 아름다운 시를 쓰는 것으로 실연의 상처를 달랬다.



 

In the Peristyle 1874 / Waterhouse


첼리스트 요요마는 "음악은 사랑이다!" 라고 말했다. 사랑이 없는 음악은 생명을 갖지 못한 것과 같다. 음악가 뿐만 아니라 음악을 감상하는 우리들 역시 음악에 실린 음악가들의 순수한 열정을 가슴으로 받아들여야만 더욱 진한 감동을 얻을 수 있다. 이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사랑이 존재하기 때문이며 우리가 음악을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은 그들에 대한 이해와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어떤 이의 삶을 희극적인 또는 비극적인 드라마로 끝맺게 한다. 가장 고독한 삶을 살았던 브람스와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한 슈만... 두 사람은 위대한 음악가의 일생을 살았지만 한 여인을 죽는 그 날까지 사랑하다가 쓸쓸하게 생을 마감한 비운의 주인공들이다. 어쩌면 그들은 천국에서 클라라와 함께 아름다운 피아노 트리오를 연주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Clara Haskil, Piano
The Hague Philharmonic Orchestra, Willem van Otterloo(condu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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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프랭크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