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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lgar / La Capricieuse Op.17

(변덕장이 아가씨)

Rudolf Koelman/바이올린, Ferenc Bognar/피아노

 

 

 

 

 

 

 

 

 

 

 

 내외 / 윤성학(1971~ )

 

 

 결혼 전 내 여자와 산에 오른 적이 있다

오붓한 산길을 조붓이 오르다가

그녀가 나를 보채기 시작했는데

산길에서 만난 요의(尿意)는

아무래도 남자보다는 여자에게 가혹한 모양이었다

결국 내가 이끄는 대로 산길을 벗어나

숲속으로 따라 들어왔다

어딘가 자신을 숨길 곳을 찾다가

적당한 바위틈에 몸을 숨겼다

나를 바위 뒤에 세워둔 채

거기 있어 이리 오면 안돼

아니 너무 멀리 가지 말고

안돼 딱 거기 서서 누가 오나 봐봐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곳에 서서

그녀가 감추고 싶은 곳을 나는 들여다보고 싶고

그녀는 보여줄 수 없으면서도

아예 멀리 가는 것을 바라지는 않고

그 거리, 1cm도 멀어지거나 가까워지지 않는

그 간극

바위를 사이에 두고

세상의 안팎이 시원하게 내통(內通)하기 적당한 거리

 

 - 시집 『당랑권 전성시대』 중에서 -

 

  

 

 

 

언젠가 지하철 역에서 위의 시를 처음 보곤

혼자서 미친 놈처럼 실실 웃었던 적이 있다.

처음 연애하던 시절,

춘천에 있는 산정호수로 그녀와 데이트를 갔다가 저런 일이 벌어진거다.

들킬락 말락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었던 그때의 순간이 기억난거다.

신비스럽게 느껴졌던 그녀의 껍데기를 벗겨보는 듯한 느낌에

괜히 초겨울에 이마에 땀이 질질 났던 기억...

아, 이게 순정이었던거다.

그 아슬아슬함의 긴장이 내 청춘을 빛나게 했던거다.

 

내외(內外)란 의미..

예의상 서로 얼굴 마주대하기를 피한다는 뜻이다.

겸하여 부부란 뜻도 있다.

민망한 부분엔 서로 모른 척 해주는..

그래서 내외 간에 서로 감칠맛나는 거리..

생각만 해도 침이 꼴깍 넘어가는 간극..

말초신경이 바짝 조여지는 순정의 거리..

그 옛날 연인들이 담장 아래 발길을 못 돌렸듯,

그 1㎝의 거리를 지키기 위해 보초를 서던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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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프랭크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