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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변의 인적자원을 면밀히 검토해 보았다.

내가 자주 만나 어울리는 사람은 누구이며, 그들의 성격, 성장배경 등을 분석해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내가 자주 어울리는 사람은 대부분 건강하고, 발랄하며,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활달한 성격의 사람임을 알게되었다.

그게 무슨 놀랄 일이냐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분명 충격이었다.

 

나는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던 것이 있다.

"건강한 사람은 약한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거다. 밝은 사람, 긍정적인 사람만 만나면 누가 우울질적인 사람,

또는 비관적인 사람을 친구해 줄 수 있겠는가?"

그러면서 스스로 혼자 고상한 척 다했다.

사람들은 나의 생각처럼 나의 삶이 고상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사실 솔직히 말하건데 사람 현혹시키는 것은 참 쉽다.

사람들은 말에 쉽게 넘어간다. 사랑에 대한 말을 아주 멋지게 하면 "아!~ 저 사람은 사랑에 대해

눈을 뜬 사람겠구나~~"라고 믿는다.

어려운 사람들과의 베품과 나눔에 대해 호소하면 대단한 인격자라고 믿을 것이다.

 

과거 독일 국민이 히틀러의 연설하는 말들을 히틀러의 인격, 국가를 향한 비젼으로 받아들인 것처럼,

오늘의 대중도 다르지 않다.

멋진 말을 하면 곧 멋진 사람이라고 확신한다.

예나 지금이나 대중들은 지도자의 말을 검증할 도구를 갖고있지 못하다.

아니 대중은 너무 착해서 지도자의 말을 그대로 믿는다.

"그 분"은 자기가 말한대로 살거라고 믿는다. 그러다가 또 뒷통수맞는다.

 

그렇다면 나는 왜 밝고, 활달한 사람과만 주로 어울렸던 것일까?

첫째, 청량소를 원하는 인간의 본성때문이다.

재작년이었던가.. 강원도 동해에서 봉사 활동을 하고 서울로 귀경할 때의 일이다.

혼자 운전하고 올라오면 심심하고 졸릴까해서 청년들 중에 활달하다고 판단되는 남,녀 3명을 선발?해서

내 차에 태우고 상경했던 적이 있다.

5시간의 장거리 운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졸음과 싸우며 부른 헌신적인(나 졸음운전하지 말라고..ㅋ) 노래, 이야기, 유머의 힘이 컸다.

나비가 꽃을 찾듯, 밝은 사람을 찾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고, 활달한 사람이 기분을 유쾌하게

해주는 것은 분명하다.

 

둘째, 인성이 밝은 사람은 늘 먼저 스스로 사람을 찾아온다.

내 주변의 밝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대개 자기들이 먼저 찾아와서 친구하자고 말하는 사람이다.

내가 인상이 좋아보인다고 인사하면서 친해진 사람들. 연애 상담받고 싶다고 찾아와서 친해지고,

300원짜리 커피 한 잔 들고와서 나의 중매를 통해 평생 만남을 보장받은 어떤 여학생 등...

지금 내가 주로 어울리는 사람은 모두 나에게 먼저 스스럼없이 찾아온 사람이었다.

- 사실 난 뚜쟁이다. 지금까지 내가 중매해서 결혼한 쌍만 16쌍이다.

대단하지 않은가. 때문에 난 은퇴해도 걱정없다.

결혼정보회사를 차릴 생각이니까.. -

 

먼저 친해지자고 찾아오는 사람들은 대개 건강한 사람이다.

자폐증이 뭔가? 쉽게 말해서 사람 사귐의 능력의 상실이다.

스스로 친구를 찾지 못하고, 친구를 만들지 못하는 정신 상태를 자폐증이라고 말할 수 있다.

결국 건강의 지표는 사람을 향해 사교성과 먼저 찾아감의 정도에 달려있다.

단순히 말해 내가 좋아하는 사람, 사귀고 싶은 사람에게 쉽게 다가설 줄 안다는 것은

정신이 건강하다는 뜻이 된다.

 

셋째, 어두운 사람은 찾아가야 한다.

극심한 환난과 역경을 겪은 사람은 만사에 회의적이 된다.

사람 만나기를 무서워하고, 사람에게 배신당한 경험은 사람을 믿지 못하게 한다.

실패는 자신감을 잃게 한다.

자신감의 상실은 타인에게 수용되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을 잉태한다.

"나 같은게 뭐 볼게 있다고 저 사람이 나에게 관심을 갖겠어"라며 무너진 자존감을 갖게 된다.

 

이런 심정을 가진 이들에게 나는 "너도 다른 사람처럼 좀 적극적으로 살아"라는 명쾌한 해법은 주었지만

그 해법이 그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해법인지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어두운 사람에게 밝은 사람처럼 찾아오면 되지 않느냐는 강요만 되풀한 것이 나를 밝은 사람에 둘러싸인

고립된 존재로 만든 것이다.

 

결국 내가 밝고, 활달한 사람과만 어울린 것은 나의 정신이 건강하지 못함을 시사한다.

왜냐하면 밝은 사람은 찾아가는데 나는 어두운 사람을 한 번도 찾아간 적이 없기 때문이다.

어두운 사람이 내 주변에 없는 것은 내가 찾아가는 능력을 상실한 진짜 어두운 사람임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림자는 빛의 존재를 증거한다.

 

나에게 우울한 친구가 있다는 것은 내 삶이 밝다는 것을 증거한다.

우울질적이고 비관적인 사람이 내 곁에 친구로 있다는 것은, 내가 사람을 찾아갈 수 있는 건강한 사람임을

설명하는 시청각이다.

올 여름에는 사람을 찾아가는 밝은 사람으로 오늘을 보내리라 결심한다.

내 차에 태우고 싶은 사람은 당신이다.

나를 찾아오지 못하는 바로 당신.

오늘부터 나는 그를 향해 "야타족"이 되련다.

 

 

 

Marry You / Bruno M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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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프랭크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