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의 두 얼굴 일상 속에서/나의insight2014. 5. 28. 09:52
인터넷은 익명의 바다이다. 자기이름을 숨기고 마음껏 항해하며 즐길 수 있는 비밀의 화원이다. 인터넷 악성댓글이 연예인 비관자살의 주원인이라고 하지만 익명성이 해악한 것만은 아니다. 익명성은 두 얼굴이 있다.
사람을 죽이는 온갖 루머는 익명성에 뿌리를 둔다. 미워하는 사람을 죽이고 싶을 때 익명성만큼 자신감을 주는 폭력도 없다. 조선시대 충신은 [익명의 투서]로 피해를 입었다. 익명의 상소문에서 반역이니 뭐니 언급이 되면 그날 이후로 충신은 역적이 되버린다. 모리배들은 ‘투서’를 이용 권력을 유지하고 정적을 제거했다.
실생활에서 익명성은 조잡한 상품의 원인이기도 하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세종대왕 때 고려 분청사기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유행했다고 나온다. 세종 이전에는 귀족들만 향유하던 것을, 세종 때 전국적으로 누구나 쓸 수 있을 만큼 보편화된 것이다. 그런데 보편화되자 조잡한 가짜까지 등장하여 판을 치게 된다. 결국 세종대왕은 분청사기 아래에 만든 이의 이름을 새기도록 명령했다. 말하자면 도자기 실명제를 실시한 것이다. 실명제 조치 이후 분청사기는 다시 무늬와 재질에서 최고 수준을 발휘했다고 한다. 그 명령을 내린 해가 1420년이었는데, 현재 발굴되는 분청사기를 1420년을 전후로 비교하면 1420년 이후의 분청사기의 예술성, 기술력이 그 이전시대보다 월등히 높다고 한다.
익명성은 건강한 비판은 있으나 용기가 없어 침묵하는 이의 입을 열게 한다. 비판의 대상이 가할 보복으로부터 비판의 입을 여는 사람을 지켜주는 울타리이기도 하다. 세상은 비판의 긍정성을 인정하며 마음껏 비판하라고 하지만 비판자의 이름을 기억하며 불이익을 준다. 그래서 익명의 고발을 보장해주는 사회체제가 필요한 것이다. 악에 대한 고발자의 익명성이 보장되는 사회는 더 건강해진다.
미국은 내부고발자 보호법을 시행한다. 기업이나 조직에 속한 자가 그 조직의 비리를 고발했을 때 그의 이름과 사생활을 철저한 비밀에 붙인다. 그리고 고발자의 생존과 생명을 책임진다.
세상살이가 쉽지 않은 이유는 흑백으로 나눌 수 없기 때문이다. 좋다, 나쁘다가 분명하면 선택의 갈등은 없다. 실명이 좋으냐 익명이 좋으냐 역시 이분법을 풀 수 없는 딜레마다. 생각이 필요한 이유는 선악이 공존하고 겹치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하면 군자의 도에 서게 된다.
며칠 전 내가 아는 몇 몇 사람들이 선한 일?을 하고자 하는 걸 우연히 알게되어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익명의 악플로 얼룩진 세상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의 얼룩진 것들을 닦아주는 걸레와 같은 것.. 익명의 사마리아인.
Love overflows / Michael Hop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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