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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7. 8. 07:27

용기있는 남자 일상 속에서/지나간 일상2022. 7. 8. 07:27

 

 

 

나는 아주 고약한 버릇 한가지가 있다. 예쁘거나 잘난 사람에게는 먼저 아는 척을 하지 않는다. 미남미녀들은 그 외모의 수려함 때문에 충분히 세인의 집중을 받는다. 그래서 교만해져 있다. 공주병에 걸린 여자들은 반드시 도끼병이라는 합병증세까지 보인다. 지나가는 모든 사람이 흘깃 자기를 한 번 더 쳐다본다는 착각을 한다. 친절하게 대해주면 자기에게 관심을 가지고 접근하는 유혹이라고 판단한다. 자신이 타인에게 사랑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다는 것이 때로 피곤하다며 혼자있고싶다는 말을 자주 주절거린다.

 

그래서 난 잘난 인간의 콧대를 높여주는데 일조하고 싶지 않아서 절대로 먼저 말을 걸지 않는다. 이런 나의 고약한 버릇을 말하면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

"프랭크님, 그래서 저에게 아는 척하지 않으셨군요. ^^v"

정말 이쁜 농담이다. 그러나 듣는 나는 환장한다. 정말 아는 척하고 싶은 얼굴, 먼저 말을 건네고 싶은 얼굴인데 본인은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것에 화가 치밀어 오른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저~ 이제부터 저 아는 척하지 말아주세요"

정말 비참한 절규다. 듣는 나는 눈물이 나려한다. 저러니 내가 더 아는 척해줘야한다는 측은함이 밀려온다.

 

난 정말 예쁜 여자를 한 명 알고있다. 모델같은 세련된 몸매와 패션감각, 뚜렷한 이목구비에서 풍기는 고혹스러움은 남자를 혹스럽게할만큼 매력적이다. 범인은 감히 가까이 할 수 없는 황실 여인의 위풍이 느껴지고, 그녀의 자태는 화려하다못해 눈부시다. 남자라면 누구나 그녀의 애인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하지만 나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고... 아니, 나같은 사람은 거들떠 보지 않을거라는 자괴감 때문에 누구도 다가서지 못할만큼 고고한 여자이다. 대부분 그녀의 애인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애인일 수 없다는 무력감은 세가지 반응으로 나뉘어진다.

 

첫째, 공상의 반응이다.

그녀와 팔짱을 끼고 걷는 나를 상상해본다. 뭇사람이 자기를 쳐다본다. 그녀의 하얀 볼을 어루만지는 손의 떨림에 놀라 순간 눈을 뜬다. 캄캄하다. 칙칙한 노총각의 냄새가 가득하다. 내 방이다. 한숨이 난다. 용기없는 자신이 너무 밉다. 밤이 너무 길다.

 

둘째, 자위의 반응이다.

그녀만 여자가 아니다..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맞는 배필이 나타날 것이라고 믿는다.

내 모습 그대로 받아줄 멋진 여인은 어딘가에 숨어 있을거라고 믿는다. 때론 그녀를 향해 나 같은 남자를 알아보지 못하는 안목을 불쌍히 여긴다. "저 여자가 나 말고 어떤 진실한 남자를 만날 수 있을까?"하는 아빠같은 염려까지 한다. 그러면서 그녀가 진실한 남자를 만날 수 있기를 짧게나마 기도한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그 진실한 사람이 바로 나 같은 사람이라는 기준을 눈치채고는 스스로 멋쩍어 한다. 능력은 모자라지만 진실한 자신을 알아주지 못하는 그녀가 야속하기도 하다.

 

셋째, 비난의 반응이다.

비난은 무너지려는 자존심의 사전 방책이고 무너진 자존심의 사후치료이다. 자기를 아는 척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그녀를 도도하고 안하무인이라고 말하고 다닌다. 남자에 대한 기준이 지나치게 높다고 예단한다. 우리같은 남자는 사람취급하지 않는다고 흥분하며 비난을 독점하지 않고 설파하는 열심을 보인다. 잘나가는 남자에게만 관심을 갖는 속물이라며 분노한다. 그러면서 저런 여자하고 사는 남자는 불행해질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불행지더라도 좋으니 그녀와 사귀고 싶다는 자기 내면의 소리에 화들짝 놀라게 된다.

 

실제로 비난이 사실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아는 그녀에게만큼은 비난은 날조이다.

그녀는 그 탁월한 외모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남자들이 좋아하지 않는 스타일이라고 걱정한다. 사실 그녀의 도도함은 사실 부끄러움의 왜곡이다. 남자들이 접근하면 부끄러워서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딴 곳을 응시하며 지나간다. 그런데 남자들은 그녀의 그런 모습을 도도하다고 생각해버린다. 좋아하는 사람이 지나가면 가슴이 콩닥거려 아예 고개를 숙여버리는 것이건만, 남자는 무시당한다는 느낌을 받는 모양이다.

 

그 여자는 멀리서 그 남자를 보기라도 하면 멈춰버린다. 그 남자가 사라질 때까지 숨어서 지켜보기만 한다. 그 여자에게 콧대란 없다. 조금이라도 얼굴을 알게되면 부끄러움 대신 세심함으로 다가선다. 먼저 전화하고, 먼저 문자 보내고, 먼저 좋아한다고 말한다.

남에게 상처를 줄까 노심초사하고, 귀족적 옷차림의 자신을 남자들이 좋아하지 않는다면

평민처럼 옷을 입어볼까라고 고민하는 착한 여자이다. 물론 그녀의 옷차림은 여전히 귀족적이지만...

 

용기있는 남자가 미인을 차지한다. 정말 맞는 말이다. "손대면 톡하고 터질것만 같은..." 여자이건만 누구도 그녀의 꽃잎에 다가서지 않는다. 화려함에 눈이 멀어 순박함을 보지 못하는 이들 때문에 오늘도 그녀는 바늘로 허벅지를 찌르고 있다. 머지않아 송곳으로 허벅지를 난도질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먼지가 되어 / 김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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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프랭크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