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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7. 1. 17:02

추억의 댓가 청구동 시절/나의 가족들2013. 7. 1. 17:02

 

 

 

 

 

 

 

 

내 아버지는 몇년 전에 하늘나라로 가셨다.

돌아가시기 직전 어머니에게 그동안 고생 많이 시킨 것을 용서해달라고 하시면서 눈물로 사과를 하셨다.

그리곤 만면에 웃음을 가득히 담으시면서 숨을 거두셨다.

 

난 그때 무슨 일 때문에 철야작업을 하고있다가 집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는 급히 달려갔었다.

아버진 장남인 내게 2가지 유언을 남기셨다.

하나는, 당신의 시신을 의과대학 해부학교실에 기증하라 하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그날 아침 대학병원 엠블런스가 달려와 아버지 시신을 싣고 갔다.

그때 앰블런스에 함께 동행했던 난 극한 슬픔에 멍한 기억 밖에는 없다.

그 다음은, 당신이 세상을 떠나신 후 문상오시는 분들에게 폐를 끼치지말라는 것이었다.

조의금을 절대 받지말라는 것이다.

당신께서 이 땅 위에서 알고지낸 분들에게 사랑의 빚진 것이 너무 많고, 모두에게 신세진 분들인데

마지막까지 받을 순 없다는 말씀이었다.

 

나는 지금 아버지를 오직 사진과 추억으로만 기억할 뿐이다.

아버지와 함께 한 시간. 아버지가 태워주는 다리비행기, 아버지와 뛰놀던 운동장은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우울해 한 적도 없고,

아버지의 빈자리를 느끼며 여지껏 한번도 공허감을 느낀 적도 없다.

 

상처는 추억의 흔적이다.

아름다운 추억이든 추한 추억이든 '그 사람'이 기억의 한 구석을 차지할 때 추억은 지금이라는 현실에 상처를 남긴다.

아름다운 추억은 그리움으로 힘들게 한다.

사춘기 때 돌아가신 아버지를 잃은 사람은 평생 아버지를 잊지 못하고 아버지에 대한 향수로 웃고 운다.

추한 추억은 분노를 곱씹게 한다.

사춘기 시절 아버지의 외도를 목격한 사람은 평생 아버지를 증오하고,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는 독기 때문에

한 여인을 '사랑하기'를 두려워한다.

 

[노트북] 이라는 영화.

치매에 걸려 입원한 아내를 위해 남편은 연애일기를 쓴다.

남편을 자원봉사자로 아는 아내에게 남편은 매일 젊은 시절 두 사람의 뜨거운 열애를 읽어준다.

아내는 순간 감격하며 기억을 재생하고 자원봉사자 남편과 뜨거운 포옹을 한다.

그리고 몇 시간 후 그녀는 이내 추억을 잊어버리고 행복하게 창 밖 풍경을 즐긴다.

추억할 때는 눈물이지만 망각할 때는 행복한 아내.

하지만 남편은 잊을 수 없어 힘들고, 잊을 수 없어 사랑하며,

 

잊을 수 없어 그녀의 병상을 지키는 자원봉사자로 그녀를 지킨다.

잊혀지는 아픔보다 잊을 수 없는 아픔이 더 크다.

그 사람이 나를 잊는 것은 확인할 수 없기에 잊지 않는다고 자위하며 견딜 수 있다.

하지만 내 기억 속에 남은 그 사람의 얼굴, 그 사람의 미소, 그 사람의 고백이 날카로운 비수로 가슴 한 켠을 찌른다.

건망증이 심해 쉽게 물건을 잃어버리지만 그 사람만큼은 내 마음에 못박혀 잊은 적이 없다.

방 한 켠에서 눈물을 흘림도 잊지 못함 때문이고,

자신도 모르게 광화문의 한 카페로 향하는 것도 잊지 못함 때문이고,

일손이 도대체 잡히지 않음도 잊지 못함 때문이다.

잊을 수 없어 다시 사랑을 시작한다는 것에 죄책을 느끼며 오늘도 방 한 켠에서 시를 쓰게 된다.

 

추억이 없어 상처가 없는 것보다, 추억이 준 상처를 부둥켜 안고 그리워하고 분노하기도 하는 것이 인간답다.

훗날 아프게 되더라도 나는 오늘을 잊지 않을 것이고, 어제 역시 또렷이 일기장에 남겨둘 것이다.

상처를 견디면 추억은 역사가 되기 때문이다.

 

 

 

어제, 어머니를 비롯한 우리 남매들이 다 모였다.

여동생이 피아노 앞에 앉더니 노래를 부른다.

O Mio Babbino Caro..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란 노래다.

어제는 돌아가신 아버지 생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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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프랭크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