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10

« 2024/10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2013. 6. 17. 07:56

일상에서의 탈출 음악에 부쳐/클래식 칼럼2013. 6. 17. 07:56

 

 

 

나는 커피를 즐겨마시는 편이 아니다. 그러나 커피를 마시는 2가지 경우가 있다. 하나는, 기분좋은 사람과 만났을 때, 그리고 지루한 장마철.. 모든게 눅눅하게 젖어있을 때다. 오늘처럼 습기가 가득한 날에 쿠키 한조각에 따끈한 커피 한잔이 최고인 것 같다. 커피포트에 담아놓은 물이 어느새 펄펄 끓고 있다. 커피 잔에 물을 붓고 커피 두스푼, 프림 한스푼을 넣고 휘젖는다. 빠레뜨에 두가지 색의 유채물감을 배합할 때 물결처럼 파동치는 컬러의 미묘한 톤을 본 적이 있는가? 커피의 짙은 브라운 컬러와 프림의 베이지 컬러가 섞일 때도 그런 이미지가 나타난다.

 

커피를 그냥 마시면 별 재미를 느낄 수 없다. 다정한 사람과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나누거나, 오래 전 읽다만 책을 마저 읽고 싶을 때, 또는 모네 그림을 감상할 때 커피는 그 향기만으로도 동반자 노릇을 톡톡히 해준다. 만약 커피가 없었다면? 산다는 것에 대한 조그만 즐거움을 하나 빼앗긴 것이겠지. 지루하게 이어지는 장마철, 월요일 아침... 커피의 그윽한 향취가 사라지기 전에 분위기를 한껏 내고 싶었다. 알프레드 브렌델이 연주하는 베토벤《피아노 소나타 31번》CD를 로딩시켜 놓고 책꽂이에서 포켓북을 한 권 꺼내 들었다. 


 


 

아이는 그것도 음계처럼 훌륭하게 연주했다.
소나타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마지못해 하는 연주였지만
엄연히 제대로 된 곡조가 흘러 나왔다.

*

*

그녀는 소나티네에 귀를 기울였다.
아이가 빚어내는 음악이 저 밑바닥으로부터
그녀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을 듣는 동안 그녀는
기절할 것만 같은 생각이 자꾸 들었다.

*

*

소나티네는 아직도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 곡조는 그녀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길들일 수 없는 반항아의 손을 타고
깃털처럼 가볍게 날아올라
또 다시 그녀를 휘감고
사랑의 지옥행을 한 번 더 선고했다.
그리고 지옥의 문들이 다시 닫혔다.

*

*

좀 더 천천히 쉼표를 지켜 연주했다.
아이는 음악의 매력에 사로잡혔다.
그 애가 원한 것도, 작정한 것도 아니었건만
손가락 사이로 흘러 넘친 곡조는
온 세상으로 한번 더 퍼져나가
가슴을 적시고 마음까지 빼앗았다.
저 아래 부두까지 음악이 흘렀다.

- 모데라토 칸타빌레 中에서 -

 

 

 

 

 

프랑스의 여류 소설가 마르그리트 뒤라스(1914-1996)의 소설{모데라토 칸타빌레}에 나오는 글의 일부분이다. 소설 제목에 음악 용어가 쓰인 예는 그리 흔치 않은데, 제목이 주는 음악적 향기 때문에 이 책을 가끔 들쳐보곤 한다. 칸타빌레는 차이코프스키 <현악4중주 제1번>의 제2악장에 쓰인 <안단테 칸타빌레>가 가장 유명하다. '안단테 칸타빌레'는 '느리게 노래하듯이'란 음악용어이며, 소설의 제목으로 쓰인《모데라토 칸타빌레》는 '보통 빠르기로 노래하듯이'라는 뜻이 담겨있다. 


▒ Moderato Cantabile

소설의 무대는 조그만 항구 도시... 제철무역회사 사장의 정숙한 아내인 안 데바레드는 매주 금요일이면 아들에게 피아노 교습을 시키기 위해 바닷가에 면한 이층집으로 간다. 어느 날, 아들을 데리고 피아노 교습을 받으러 가는데 - 안의 아들은 피아노 교습을 무척 싫어하는 눈치 - 아들이 소나티네를 연습하는 도중, 길 건너편 카페에서 어떤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그것은 죽음에 직면한 단발마적인 비명이었다. 안은 카페에서 쇼뱅이라는 낯선 남자를 만나 여자의 죽음에 관한 사연을 듣게 된다.


 

Garden at Sainte-Adresse / Monet

놀랍게도 죽은 여자와 그녀를 죽인 남자는 서로 끔찍하게 좋아하던 연인 사이였다. 그런데 어째서 연인을 죽여야 했을까? 쇼뱅의 말로는 그 남자가 여자를 죽일 수밖에 없었다는데... 질투? 아니면 삼각관계의 비참한 결과? 그 남자는 그녀를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그녀를 총으로 쏴 죽이고 자신은 미쳐 버린다. 안과 쇼뱅은 그들의 광적인 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에게 이끌리지만 두 사람의 만남은 프랑스 영화의 라스트 씬처럼 아쉽게 끝난다. 각자의 욕망을 가슴 깊이 묻어놓은 채.


▒ 보통 빠르기로 노래하듯이

뒤라스의《모데라토 칸타빌레》. 이 소설은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한 여인이 주인공이지만... 절대적 사랑을 찾아 헤매는 주인공의 내면적 갈등이 <소나티네> 선율에 실려 잔잔하게 펼쳐진다. 한 아이의 엄마이자 한 남자의 아내로서의 도리와 절대적 사랑에 대한 갈망 사이를 오가는 그녀의 가슴 속엔 근원을 알 수 없는 뜨거운 열정이 파도처럼 일렁인다. 그녀는 자신의 일상으로 부터 탈출하고 싶다. 그러나 그 평범한 일상이 그녀를 옴짝달싹 못하게 포박하고 있다.


 

 

Marguerite Duras

『보통 빠르기로 노래하듯이』... 뒤라스는 왜 자신의 소설에 그런 제목을 붙인 것일까... '아다지오 칸타빌레'도 있고 '안단테 칸타빌레'도 있는데 말이다. '보통 빠르기'란 단어는 '평범한 일상'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 아닐까? 그리고 '노래하듯이'는 일상이라는 굴레로부터 벗어나려는 '인간 내면에 감춰진 욕망'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평범한 일상 뒤에 감춰진 욕망의 그림자... 상상과 현실을 중첩시키는 뒤라스의 암시적 문장 속에는 일탈을 꿈꾸는 여성의 심리가 섬세하게 실려있다. 흥미로운 점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31번의 1악장의 악상기호 역시 '모데라토 칸타빌레'라는 것이다.

 

 

 

 

 

 

제1악장 Moderato cantabile molto espressivo 

 

 

이연화 / Piano 


 

 

▒ 어떻게 쉴 것인가

소설《모데라토 칸타빌레》는 아주 오래전, 잔느 모로와 장 폴 벨몽도가 주연한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이 영화는 평론가들로부터 별 넷을 받을 정도로 수준높은 영화로 알려져 있다.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과 광기 그리고 죽음이란 주제를 내면 속에 감춰진 욕망의 거울에 투영시킨 <모데라토 칸타빌레>는 남녀간의 짧은 사랑을 그린 3류 연애소설이 결코 아니다. 누구에게나 물질적 만족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빈 공간이 있다. 뒤라스는 자신의 분신 데바레드를 통해 그러한 빈 공간 - 고독함과 소외감 - 을 미분법적으로 담아내려 했던 것이다.

 

01

02

03

 

 

 

 

 

종일 내리는 지루한 비처럼... 부지런히 달려도 다람쥐 쳇바퀴처럼 늘 똑같은 자리에 서있는, 그래서 지루할 수밖에 없는 우리들의 삶. 평범한 일상 속에서는 짜릿한 행복이 존재하지 않는단 말인가?

모든 것을 다 훌훌 털어 버리고 어디론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으로 떠나고 싶은 여름이다. 이 복잡하고 시끄러운, 옴짝달싹 못하게 조여드는 현실이라는 이 치열한 전쟁터를 벗어나 자신만의 새 세상을 만들고 싶은 계절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이렇게 "전제 없는 탈출"을 생각하고 "한 번쯤은 망가져 보고 싶다"는 일탈의 기대를 가진다.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고,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강박관념, 팽팽한 긴장으로부터 놓임 받고 싶어 한다. 이미 익숙해져 축 처진 인생이 되어버린 그런 일상적인 삶에서 아무런 제약 없는 심리적 자유를 갈망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에게 휴가라는 것이 필요하고 여름은 그 휴가의 계절이다. 쉼이라는 것은 단순히 일을 하지 않거나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정도의 의미가 아니다. 타의의 강제적 힘에 의해 움직여지는 기계적 일상으로부터의 자유를 말한다. 먹고 살기 위해 혹은 체면이나 자리 유지를 위한 목적있는 사고(思考)나 몸짓이 아닌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리는 것이다. 제도권의 삶의 틀에 적응하기 위해 수 없이 뒤집어 쓴 인격이라는 가면(Persona), 지위나 자리를 위해 나에게 주어진 숨 막히도록 힘겨웠던 가면을 벗어버리고 이젠 정말 본래적인 나로 돌아오는 것이 휴식이다.

 

그래서 쉼은 일상으로 부터의 탈출이다. 누구를 만나거나 무슨 일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부터의 자유, 짓눌려 있던 마음의 짐으로부터 자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원초적인 자아, 본래의 자아로 돌아와서 자신을 추스릴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생존을 위해 떠밀려 하던 역할을 주체적인 자기 결단으로 할 수 있게 되고, 자칫 남의 삶을 살 뻔 한 인생을 자신의 삶으로 회복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누군가 휴식을 재창조라고 했다. 그래서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고 했던 어느 자동차 회사의 광고 카피에 사람들은 그렇게도 공감한 것 같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고 싶은가?" 당신이 만일 일상에서의 탈출을 꿈꾼다면... 커피의 진한 향기 속에 《모데라토 칸타빌레》의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31번> 1악장, 또는 모짜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8번>을 감상하며.. 그것으로도 충분하지 않는다면 비오는 창문 밖 커텐을 제치고 고전영화 <모데라토 칸타빌레>를 다운받아 보면서 어떻게 떠날 것인가를 생각해 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Alfred Brendel, Piano

 

     

   

 I Allegro maestoso 


              

II Andante cantabile con espressione


III Presto 

  

 

 


 


 

 

'음악에 부쳐 > 클래식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심원  (0) 2013.06.29
비밀 & 짝사랑  (0) 2013.06.21
겨울이 오기 전에  (0) 2013.06.15
통사론  (0) 2013.04.05
화장  (0) 2013.04.02
:
Posted by 프랭크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