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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이들을 데리고 어머니가 계시는 큰 누나 집엘 갔다. 이번 설에 아이들 영어학교 때문에 손주들을 보지못한 어머니이신지라, 집에 들어서자마자 우리 애들을 보시곤 너무나 반가워 사랑스럽게 껴안으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손주보는 낙을 자주 안겨드리지 못하는 불효를 저지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주 좀 들리지"..

원망섞인 호령도 하실 수 있으련만 들쭉날쭉 바쁜 내 삶을 이해하시는 어머니는 손주를 안고 기도부터 해주신다.

그리곤 나를 보시면서 측은해 하신다.

"요 며칠 새 왜 이리 얼굴이 빠졌누?"

"머리는 왜 그렇게 치켜 올렸니?"

 

 

팔순의 어머니에게 언제나 나는 철없는 아들일 뿐이다. 아무리 건강해도 어딘가 부족한 부분을 발견하곤 자신의 모성으로 채워주시려한다. 어머니의 측은한 잔소리에서 아킬레스의 어머니를 읽게 된다. 테베강에 몸을 담그면 강한 사람이 될거라는 신탁에 의지해 아킬레스의 발뒤꿈치를 잡고 강물에 아킬레스의 온 몸을 담그던 그의 어머니 테티스(Thetis)의 인상이 겹쳐진다. 하지만 자신이 잡은 발 뒤꿈치에만 강물이 묻지 않음으로해서 아들을 잃어야했던 테티스의 한이 내 어머니의 평생을 지배하는 것 같다. 이 아들 놈을 어떻게든 쓸모있게 키워보겠다는 "살림"의 의지가 팔순 노모의 눈빛과 기도에 서려있다.

 

아들의 약점을 훑고 훑어서 온전한 사람으로 세워보겠다는 어머니의 의지를 그동안 난 잔소리로 치부하며 얼마나 거부했던가? 어머니께서 아들의 약함을 찾는 이유는 비난하기 위함이 아니다. 인생의 선험자先驗者로서 나를 채워주기 위함임을 이제 안다. 누구보다 건강한 아들로 만들어보려는 어머니의 천명을 이루려는 몸부림임을 이제 안다.나도 자식을 키우는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이 세상은 장점이 많은 사람을 찾으려하고 스펙이 많은 사람을 부각시킨다. 하지만 어머니의 눈에는 아들의 약점 밖에 보이지 않음을, 나도 내 자식들을 키우면서 배우게 되었다. 어머니처럼 살고싶다. 어머니에게 발견된 아들의 약점은 언제나 자신이 채워줘야 할 삶의 부족이다.

 

 

세상은 내 약점을 공격하지만 어머니는 나의 약점을 보호하신다.

세상은 내 약점을 이용하지만 어머니는 아들의 약점을 감싸 안으신다.

세상은 내 약점을 조롱하지만 어머니는 내 약점을 아파하신다.

세상은 내 약점을 고쳐야한다고 훈계하지만 어머니는 아들의 약점을 짊어지신다.

 

 

요즘 내가 잘 아는 젊은이들의 약점이 눈에 선하게 들어온다. 그러면서 어린 사람을 대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자꾸 잔소리가 많아진다.

"옷은 왜 그렇게 입었니? 좀 단정하게 입고 다녀라"

"머리 스타일을 바꾸면 더 멋있을텐데"

"넌 화장기없는 얼굴이 더 예뻐. 화장 좀 작작해라"

내 어머니처럼 나도 측은지심이 더 깊어졌으면 좋겠다. 그들의 아킬레스건을 내 사랑과 넓은 아량으로 껴안아 질곡의 화살로부터 보호해주고 싶다. 나 어릴 적 밤을 새워 양말을 꿰매는 어머니처럼, 나의 인생의 밤을 그들의 헤지고 터진 약점을 꿰매며 지새우고 싶다. 눈이 침침해 눈물이 나려할 때 비로소 잠자리에 드시는 어머니처럼 말이다.

 

오늘 아침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출근을 하려고 어머니의 방을 지나치는데 어머니의 신음소리가 들렸다. 옛날 어린 아들의 양말대신 어린 손주들의 인생을 껴안는 기도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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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프랭크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