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10

« 2024/10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2012. 11. 24. 10:34

여자의 핸드백 일상 속에서/지나간 일상2012. 11. 24. 10:34

 

 

남자에게 있어 가방은 서류, 또는 책을 넣는 것 이상의 의미가 없다.

지인이 내 가방을 보겠다고 한다면 나는 서슴없이 보라고 가방을 건네준다.

가방에 대단한 보물도 없을 뿐 아니라, 나의 은밀한 기억을 드러낼 그 어떤 것도 소지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나뿐 아니라 대부분의 남자에게 있어 가방은 실용성외에 어떤 의미도 없다.

 

반면에 여자에게 있어 가방은 남자와는 사뭇 다른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시오노 나나미의 글에서 읽은 것 같다.

"여자가 생각하는 핸드백은 여자의 마음이며, 육체의 일부이다"

 

여자에게 핸드백은 생명이고 자신의 인격, 심지어 미래까지 담겨져 있는 위대한 소품라고 말한다면 지나친 것일까?

여자의 핸드백을 보겠다고하면 누구도 선뜻 핸드백을 건네주지 않는다.

"별 희한한 취미를 다 갖고 있군요"라는 의심의 눈초리내지 당황스러워하는 몸짓을 여실히 읽을 수있다.

 

그래서일까, 사춘기 적 난 여자의 핸드백 속이 무척 궁금했다.

대체 뭐가 들어있길래 남자에게 보여주지 않으려고할까? 하는 호기심에 누나의 핸드백에 눈독을 들였다.

그런데 피를 나눈 누나도 자기 핸드백을 보여주지 않으려했다.

"나 몰래 핸드백 뒤지면 죽을 줄 알아?"라는 공갈속에 핸드백의 비밀을 지키려는 누나 아니, 여자의 결연한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누군가.. 판도라의 상자를 열 듯 조심스럽게 핸드백을 열어보았다.

그리고 내 입에서 외마디 신음이 흘렀다.

"아! 이게뭐야"

 

그렇다. 여자의 핸드백은 참 지저분했다.

핸드백 속의 작은 소지품들은 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핸드백을 거꾸로해서 방바닥에 쏟아붓고서야 나는 여자 핸드백 속의 비밀과 접할 수 있었다.

방바닥에 드러난 깊은 여심은 한마디로 "잡동사니"였다.

기대는 산산히 무너졌다.

애인의 사진도 없고, 밀어가 담긴 편지도 없었다.

숨길 이유가 전혀 없는 물건으로 가득 차 있는 핸드백.. 실망이었다.

차라리 핸드백을 열어보지 말 걸.

그러면 나에게 여심은 언제나 신비로 남아있었을 걸,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이제 어느 정도의 세월이 지난 지금.

여자를 조금 더 알게 된 나이가 되니 비로소 핸드백의 소품이 잡동사니가 아님을 깨닫게되었다.

"핸드백은 여자의 마음"이라는 말의 의미를 조금 알 것같다.

여자는 핸드백에 담긴 소품 때문에 핸드백을 보여주지 않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핸드백 그 자체가 여자의 마음이다.

핸드백 속을 함부로 보여주지 않겠다는 의지는 곧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순결의 의지임을 알았다.

 

왜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냐구? 아내때문이다.

연애시절 내 아내도 자신의 가방 속을 잘 보여주지 않으려했다.

그러나 사랑을 확인하고, 흉물이 사라지고, 친밀해졌을 때 아내는 서슴없이 자신의 핸드백을 나에게 맡겼고,

때로는 전화를 걸어 "핸드백 열어보면 수첩이 있는데 거기서 000 전화번호 좀 찾아줘" 할 정도로

핸드백 개방권을 나에게 맡겼기 때문이다.

 

여자의 핸드백은 사랑하는이에게만 마음을 열어보이는 일편단심임을 알기에 이제 핸드백 열어보겠다고

우기지 않는다.

그건 심리적 겁탈이기 때문이다.

 

연애시절 아내와 극장에 갔다.

겨울 바람에 입술이 부르튼 나는 립크로스를 달라고 했다.

여자는 그 어두운 곳에서 가방에 손을 넣더니 립크로스를 단번에 꺼내주었다.

신기했다. 립크로스와 립스틱은 모양이 비슷하다.

그런데 아내는 어둠 속에서 자신의 손만으로 단번에 립크로스와 립스틱을 정확히 구별한 것이다.

 

여자의 핸드백이 아무리 지저분해도 그건 여자에게 장애가 되지 않는 것 같다.

여자가 핸드백만큼은 정리정돈하지 않는 이유를 나는 이제 안다.

여자의 손가락은 섬세한 레이더이다.

 

 

 

'일상 속에서 > 지나간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결혼식장에서의 덕담  (0) 2014.04.28
사소함을 자양분삼아..  (0) 2014.04.16
데이트 장소를 찾는 연인에게  (0) 2013.10.19
모험으로 사는 인생  (0) 2013.03.30
이태원 짝퉁골목  (0) 2013.01.24
:
Posted by 프랭크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