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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우리 5남매는 부모님의 결혼사진을 보면서 낄낄거리는 게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한국동란 이후에 결혼하신 두 분은 당시로서는 세련되게 양식으로 혼례를 올리셨는데

아버지와 어머니의 약간의 키 차이 때문에 신부가 신랑의 팔짱을 낀다는 것이 그만 손목을 끼고 있는 모습으로

박혀있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는 항상 어머니의 작은 키를 두고 농담을 하셨다.

사실 어머니의 키는 당시로 봐서는 그리 작은 키는 아니셨다.

160이 조금 못되는 키이지만 178인 아버진 남들 자랄 때 뭐했느냐고 놀리기도 하고

어머니가 어쩌다가 다리가 아프다고 하시면 그 짧은 다리에 아플 데가 정말 있느냐고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묻기도 하셨다.

 

 

 

주일이면 우리 온 가족은 교회엘 갔다.

본당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상당히 높았는데 늘 그랬듯이 어머닌 앞서서 너끈히 올라가셨다.

그때 아버진 혼잣말로 이러셨다.

"하여튼 너희 엄만 대단해! 어디서 저런 힘이 나오지?"

생활력이나 마음씀에서 항상 아버지보다 한 수 위인 어머니에게 아버지는 겉으로 드러나는 키로써 우월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러나 정작 어머닌 자신의 키와 관련된 어떤 농담에 대해서도 전혀 신경을 쓰지 않으셨다.

"키? 이만하면 됐지, 머. 더 클 필요있어?"하는 의연한 응수 앞에서 아버지의 큰 키는 위력이 줄어들었다.

 

중학교 다닐 때 까지만 해도 난 키가 좀 작았다.

내가 어머니 닮아서 키 작다고 푸념하면 어머니는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키 작은게 좋은거야. 앞자리에 앉으니까 선생님 말씀도 잘 들리고 칠판 글씨도 잘 보여서 공부도 잘하게 되고..

우리 속담에 작은 고추가 맵단 말도 못 들어봤냐? 작아도 속이 야무지면 되는거다."

 

사실 어머니는 키가 작아서 키 큰 사람 하는 일을 못하신 적이 없다.

딱 한 가지 전철 손잡이를 넉넉히 잡지 못하시는 것만 빼고..

그 단적인 예가 어린 시절 우리 집에서 이불장에 이불을 개서 얹는 사람이 바로 가장 작은 키의 어머니라는 것이다.

키가 큰 아버지는 다른 남편들이 대개 그랬듯이 이불개는 솜씨가 없어서 들쭉날쭉한 이불을 장 속에 우겨넣고는

잘 닫히지 않는 장문을 그대로 벌려두어 어머니가 두 번 일을 하게 만들기 일쑤였다.

 

어머니 이불 얹는 모습은 아주 재미있다.

이불을 곱게 개서는 머리에 이고 이불장까지 가셔서 까치발을 들고 헤딩하듯이 이불을 장에 넣으시는 것이다.

이불을 넣을 위치가 높아지면 순간적으로 점프를 하시면서 헤딩을 하신다.

그걸 옆에서 지켜보시던 아버진 예의 한마디 하신다.

"대단해, 대단해. 역시 대단하셔.."

 

 

 

 며칠 전 이마트엘 어머니와 함께 장을 보러 갔었다.

요즘 내게 어머닌 채소나 생선을 고를 때도 국산과 외국산을 구별하는 요령을 알려주시면서 말미에 양념처럼 덧붙이신다.

"봐라. 조선 것은 뭐든 지 짧고 통통한 법이다. 외국산보다 작아도 국산이 더 비싼 것 봐라.

난 같은 돈 주고 조선 것 먹지 외국 것 여러 개 안 먹는다."

 

공익광고에나 나올 법한 어머니의 이런 '조선 철학'이 오늘날 우리 5남매를 대체적으로? '짜리몽땅'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어머니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으시는 것 같다.

 

변덕장이 아가씨 / Elg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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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프랭크 안